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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에 젖어드는 힘; 조현택의 사진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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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2-09-23 10:33 조회1,5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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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진행중인 제22회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빛 '수집된 풍경' 전시에서 조현택의 사진작품

     

    장소에 젖어드는 힘; 조현택의 사진예술

     

    내 생에서 목도한 것들

    조현택은 스스로의 표현대로 사회적 발언이라는 일종의 태도적 범주 안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발언이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을 덜어내더라도, 사회의 투영혹은 생의 투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작가로서 알려진 빈방시리즈 이전의 초기 작업에는 본인의 이야기가 여실히 반영돼 있다. 자기에 대한 반추이자 젊은 날의 배설처럼 느껴지는 대학 시절의 내가 기억하는 것들연작과 졸업 이후의 본격적인 작업으로 볼 수 있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시리즈에선 날것의 감성이 고스란히 비친다.

    처녀작인 기억작업에서는 그의 출생지이자 삶터였던 전남 나주의 장소성이 생의 기억이라는 구체성으로 버무려진다. 거침없는 피사체의 선정과 짙은 흑백 대비는 특유의 어두운 노스텔지어를 자아내기도 한다. 사회와 맞닥뜨려야 하는 젊은 날의 방황이 근저에 깔린 소년시리즈에선 가부장적 사회 질서 안의 습성화된 남성성을 실제 중학생 시기의 남자아이들을 통해 풍자한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이 시기의 남학생들은 성인 남자들의 정형화된 행동을 좇듯, 한껏 수컷의 포즈를 취한다. 작가 본인이 그 나이 때 겪었던 특정한 상황들에서 각색한 연극적 프레임들은 낡은 앨범 속 사진과 같은 질감으로 관람객을 응시한다.

    가상이지만 실재와 같은 혹은 실재이지만 가상과 같은 이러한 작품의 뉘앙스는 소재를 잡아내는 힘과 감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작가적 영민함은 이후 조현택 사진 작업의 주요 축이 된다. 물론, 그 소재란 것은 본인의 삶에서 감지된 것이었기에, 이해의 측면에서 체감의 여지가 다분했다. 88만원 세대 속 청년의 상실감이 투영된 젊은이의 양지나 실제 겪은 노동 현장 속 직업들의 민낯을 조소와 풍자로서 담아낸 사진·영상작품 101 Jobs Propose에서 보여준 화법들도 그러했다. 때때로 그 화법은 직설이었지만, 작가의 이야기 방식이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 구술이 오로지 주관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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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택 <굴뚝연>, 2013, 잉크젯 프린트, 100x150cm

    현실 이면의 중간 지점에 대해

    어떠한 행위에 몰입함은 그 자체로 도리어 극복하고 싶거나 벗어나고 싶은 상황의 반증일 때가 많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극한의 상황과 철거를 앞둔 빈집들은 그렇게 조우했다. “23년간은 거의 밥 먹고 사진만 찍었습니다.” 4년여간 진행된 빈방작업에서 집은 삶의 흔적을 넘어선 영매의 공간이기도 했다. 조현택은 카메라 옵스큐라 기법으로 빈집이라는 죽은 공간에 날숨을 불어넣는다. 어두운 방 한쪽 벽에 작은 구멍을 뚫어 반대쪽 벽에 외부 풍경을 역으로 투사하는 옵스큐라의 원리는 역시 실재와 환영의 병치이다. 내가 살아온 삶터에 정주하던 이들이 온데간데없는 형국이란, 자못 실향민의 정서와 비슷한 극도의 상실감을 동반한다. 빈방에 비친 살아있는 풍경은 그것이 허상일지라도 그 허상을 체감하는 사람으로 향한다. 실제에서 비롯된 환영을 통해 상실의 아우라는 생의 아우라가 되고, 전복된 에너지가 빈방이라는 혼재된 공간을 가득 메운다.

    철거촌이 소재가 되는 작업들에서 보이는 난개발에 대한 비판이 전부가 아닌, 작업적 행위 자체로 매개자가 되어 질문을 던지는 조현택의 작업은 철저히 과정 지향적이며 과정 안으로 향수자를 끌어들인다. “전달자 역할이에요. 시선의 침입자가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매인 거죠. 주장은 변화하는 과정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작업에서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그저 무명의 존재에 이름을 주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결국에는 제가 바라봤던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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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택 <34번방-나주시 금계동 58>, 2015, 잉크젯 프린트, 120x90cm

    경외(敬畏), 생경하지만 익숙한

    작가에게 큰 전환점이 됐던 북경 레지던시 기간 동안에 빈방을 향한 시선은 확장된 태도로 전이된다. 시선의 확장이란 작가가 부닥친 사진에 대한 회의감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소멸된 대상을 마주하고 소멸된 대상을 사진 안으로 옮겨왔지만, 그 기제 또한 상()의 구현에 지나지 않았다. 평면 예술이 극복해야 하는 이미지 혹은 물성 자체의 유약함에 대한 인식은 전방위적 공간해석을 수반한다. 북경 시기의 <Another Panorama> 작업은 중국에서 만난 풍경을 각인시키고 싶은 바람의 결과였다. 화면의 제일 넓은 폭이 3미터 가까이에 달하는 이때의 작품은 급변하는 중국의 특성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이전의 빈방 작업보다 좀 더 건조한 시선을 유지하지만, 그 장면의 기억을 온 힘을 다해 담아내는 기록사진에 가깝다. 북경 레지던시 즈음이 작업 10년이 되는 때이기도 했지만, 작가는 치열한 현지인들의 삶을 목도하며 작업을 중단하고 싶을 정도의 자각을 경험한다. 이 시기 이후로 작업 현장은 유목의 삶 그것처럼 더욱 확대되었다. 현재도 국내외의 레지던시에 적극적인 조현택은 규정한 벽을 깨고 틀을 확장하기 위한 과정 중에 있다.

    한편, 빈방을 기점으로 정제된 조현택의 시선은 최근까지 이어지는 스톤마켓에서 더욱 완성도를 찾아가고 있다. 교외에 위치한 석상 판매상의 밤 풍경을 촬영한 본 연작은 중의적 내용을 함축한다. 부처와 보살상,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때로는 단군상과 십이지상까지 총망라하는 야간 풍경은 기이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분명 현시대 속 성상(聖像)이자 우리에게 익숙한 도상들이지만 의외의 공간에 한 데 응집되어 있는 탓에, 믿음의 현존(現存)은 순간 엇박을 탄다. 모텔 외관에 둘러쳐진 신상을 마주할 때의 키치적 감성까진 아니더라도 성스러움과 속됨, 신앙과 판매행위가 뒤섞인 특유의 장소성은 칠흑 같은 밤이라는 시간성에 점철돼 야릇한 경외를 파생시킨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대상이 있는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과 유사하게 열린 공간 속 성상 간의 기묘한 만남은 보는 이의 심중에 강한 충격을 준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극과 극의 공존을 통한 탐미적화면이 구축되는 것이다. 달리 보면, 작가 또한 직관과 본능에 의해 오랜 시간을 현장에 머물며 보이지 않는 너머의 기운을 전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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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택 <스톤마켓_웅천>, 2020, 피그먼트 프린트, 150x360cm

    필자가 처음 조현택의 사진을 마주했던 것은 빈방작업 때였다. 옵스큐라 방식은 의도치 않은 연출적 원리를 수반했기에, 기록과 연출의 중간 지점이 다분히 사적인 기호에서 불편했던 기억이다. 어찌 보면, 죽어있으면서 한편으론 생생한 분위기의 프레임이 낯설었다. 그러나 그의 작업 세계를 훑으면서 새삼 인식되는 것은 사진예술의 메커니즘 안에서 사뭇 치열한 작가적 고민들을 해왔다는 것이다. “사진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좌절감이 들었어요. 그러나 현실 이면의 중간 지점을 드러낼 수 있는 매체 또한 사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의 사진이 무엇이었으면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시대적 풍경이라고 답한다. 조현택의 사진에 집중하는 이들은 시대가 주는 어감에 천착하기보다는, 그가 사진에 부여하고 싶은 생명력에 집중했으면 한다. 그의 숙원대로 프레임 자체로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될만한 사진예술을 기대해본다.

     

    - 고영재 (미술비평, 전시기획), [전라도닷컴], 2022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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