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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하 ; 또 다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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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노암 작성일23-02-23 11:57 조회1,3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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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하 <맥>, 1981, 캔버스에 유채, 116.7x90.9cm

     

    이강하 ; 또 다른 세계

    2023.02.02-03.23 / 이강하미술관

     

    ()’ - 피안의 이상적 평온을 향한 완전한 정적 상태

    이강하(1953~2008) 작가는 오랫동안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주로 민중 정서와 리얼리즘 회화로 주목 받아왔다. 그의 작품 세계는 한국인의 본질, 정체성, 민중 지향적 세계관으로 이해되어 왔다. 작가가 시대의 삶과 그 삶을 주체적으로 세워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매료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략) 작가는 20세기 근현대를 가로지르며 견디어야 했을 고단한 삶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중심을 잃지 않고 견디고 또 견디어 가는 사람들, 그들을 한국인’, ‘민족’, ‘민중이라는 화두로 삼아 깊이 공감하고 몰입했다.

    1980년 조선대학교 1학년 재학 중(그는 공대를 졸업하고 다시 미술대학을 30살의 만학도로 재입학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며 시민군으로 행동하는 예술가였다. 이강하는 신군부의 지명수배를 피하기 위해 전국의 사찰로 은둔 생활을 했고, 그의 이러한 특별한 경험과 삶의 고통을 배경으로 <> 시리즈가 탄생했다. 청년 시민군으로 목숨을 던져 뛰어들었던 작가의 격렬한 의지와 수배자로서 고단하고 불안한 처지였음에도 작품은 마치 속세의 희노애락을 잠시 밀쳐두고 피안의 이상적 평온을 향한 완전한 정적 상태의 고요함을 느끼게 한다. 그 안의 그리고 사물들은 세속의 강렬한 감정과 욕망을 떠올린다. 작가의 마음공부가 독자적이 작업 방식으로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강하 작가의 시리즈는 불교 사찰을 배경으로 정교하게 또는 치밀하게 그려진 이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다. 화면을 구성하는 가장 주요 요소인 주위에는 불교 제의에 쓰이는 악기, 벽사의 상징인 동물(해태), 금강역사, 탈춤을 추는 말뚝이, 신상들과 꼭두들이 있다. 정교한 불교의 신앙과 종교 철학에 우리 사회의 가장 오래된 구복신앙이 융합된 상징적인 오브제들이며 성과 속을 연결하는 미디어들이다.

    금강역사(金剛力士 바즈라파니)상은 불교의 사찰 입구에 놓이는 수호신상 또는 호법 신장으로 산스크리트어 바즈라파니(vajrapāṇi/ vajradhara)의 한역으로 바즈라를 들고 있는 자를 의미한다. 바즈라(Vajra, 금강)는 천신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금강역사는 인도 신화에서 가장 강력한 전쟁의 신인 인드라라는 설과 그리스의 헤라클레스가 신격화 되었다는 설 등이 다양하다. 금강역사의 포즈는 무시무시한 전쟁을 수행하는 모습이며 동시에 우주의 생성소멸의 법칙이 온전하게 운행되도록 이끄는 우주의 춤을 은유하기도 한다. 금강역사와 마찬가지로 해로운 것들을 물리치는, 강력한 벽사(辟邪)의 능력을 지닌 신수(神獸)도 등장한다. 신수는 세상을 뒤흔드는 자연재해나 인재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동물이다.

    한편 탈춤을 추는 말뚝이는 봉건 계급사회에서 양반이 부리는 천한 하인이지만 탈춤을 통해 봉건 계급사회의 허구와 모순을 풍자하며 비판하는 반 영웅이다. ‘탈춤서사에는 이러한 사회비판적 기능과 함께 불운과 귀신을 쫓고 복과 운을 비는 제의적 의미가 강하다. 이렇듯 맥시리즈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대부분 강한 힘과 정의로운 민중성을 상징하는 것들로 세계의 주민인 신(금강역사), 동물(신수), 인간(말뚝이)이 모두 등장한다. ‘을 중심으로 이강하 작가의 예술관, 인간관, 세계관이 일관되게 투영되고 있다.

    에서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부분은 이며 그것은 이 글의 모티브이다. ‘은 초월적 해탈의 세계와 범속한 속세의 현실 사이를 가로지른다. 작가는 마치 불화를 그리듯 일정한 크기와 색으로 정교하게 을 묘사하고 있다. ‘을 둘러싼 불교 사찰의 다양한 묘사와 종교적 오브제들은 배경으로 물러나 시각이미지로 등장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화가로서, 작가의 가장 매력적인 시선은 그 자체가 화면에 부여하는 조형적인 미적 효과를 상징한다. 나아가 <>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세계 창조 신화의 숨겨진 상징과 존재의 기원, 약동하는 에너지 등을 떠올리게 된다.

    은 이 세계와 저 세계를 가로막지만 생각해보면 의 존재로 인해 이 세계가 저 세계와 다르다거나 아니면 저 세계가 우리 눈앞에 현전하게 된다. 현실계와 이상계가 을 경계로 마주한다. ‘은 무엇을 가리기보다는 거꾸로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그것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을 통해 우리 눈앞에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제시한다. 불상과 사찰의 강렬한 채색을 정확하게 시선으로부터 잘라내며 두 개의 차원이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는 하나의 세계를 두 세계로 나눔으로써 인간이 인식(분별分別) 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세계 곳곳에서 전승하는 원형적 창조신화는 세계의 창조가 베를 짜는 직녀(織女)와 같은 창조자의 행위로 묘사되어 왔다. 다시 말해 은 씨줄과 날줄이 교직하면 만들어내는 세계 창조와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되고 세계를 창조하는 베의 다른 버전이다. 베를 짜는 행위는 남녀가 아이를 이태하기 위한 행위를 은유하기도 한다. 발이 오랫동안 남성과 여성의 공간을 나누는 장치로 사용되어 온 것을 떠올려 보라.

    을 얇은 갈대나 대오리를 재료로 그 조각들을 얇은 줄이 교직하며 하나의 면을 만드는데 그 면은 무수히 많은 작은 면들로 이루어지고 동시에 그 만큼의 작은 틈새로 구성된다. 시선을 가로 막으면서 동시에 시각적 욕망을 강화하는 이중의 운동을 불러일으킨다. ‘은 우리의 시선을 가리지만 완전히 가리는 것이 아니라 조각과 조각 사이로 틈이 있어서 발 뒤에 있는 사물이나 세계가 마치 홀로그램처럼 돋보이는 효과를 준다. ‘은 조각과 조각 사이의 빈틈과 틈, 그러니까 시선을 가리는 면이 아니라 시선이 통과하는 얇은 선과 선으로 구성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 틈이란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를 보기 위해 또는 나아가기 위해 얇게 갈라진(찢어진) 상처들이라 말할 수 있다. 세상을 창조할 때 하나였던 세계가 하늘과 바다 또는 땅으로 갈라지는 세계의 근원적 상처를 통해 가능하듯, 인류의 역사와 문화도 오랫동안 망각 된(가려진) 상처들로 구성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과거 이강하 작가의 작업이 강렬한 관념으로서 민중과 민중의 삶에 밀착해 왔다는 시각을 중심으로 이해되어 왔다면, 이번 2023년 이강하미술관의 <이강하 :또 다른 세계>에 소개되는 이강하의 1980년대 작업들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예술세계가 보다 상징적이며 보편적인 시대적 문화사의 맥락에서 다가감으로써 또 시대의 다른 관람과 재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가 한국 사회의 비틀린 현실과 제도의 가장 지독했던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도망자 신세였던 당장의 안위가 불안했던 시기에 새로운 미적 세계와 조우했다는 것은 실로 불가해하다.

    - 김노암 (미술평론가)

    이강하.맥.1981.캔버스에유채.53x65.1cm.jpg
    이강하 <맥>, 1981, 캔버스에 유채, 53x65.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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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하 <맥-의식구조>, 1982, 캔버스에 유채, 130.3x162.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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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하 <맥>, 1981, 캔버스에유채. 115x91cm / <맥-탈춤>, 1981, 캔버스에 유채, 145.5x122.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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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하 ; 또다른 세계' 소장품전 일부. 이강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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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하 ; 또다른 세계' 소장품전 일부. 이강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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