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함축된 세상 풍자화 ; 노주일의 ‘그림의 꿈’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1-12-26 15:12 조회2,23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노주일 <녹슨톱 메고_저승_길동무>, 2021, 종이에 수채, 펜, 116x80.3cm 몰입 함축된 세상 풍자화 ; 노주일의 ‘그림의 꿈’ 2021.12.05-12.30 / 오월미술관 지천명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첫 개인전을 갖게 된 노주일. 욕망으로 일그러진 복잡다단한 세상을 향해 한마디 던져주고 싶은 속 얘기를 한 폭 그림으로 집약시켜내고, 무한반복 작은 선들로 마치 돌벽을 긁어 시대를 증언하듯 이토록 집요한 작업을 왜 계속하는지에 관한 ‘그림의 꿈’을 흑백 선묘 펜 그림과 작업쪽지들로 펼쳐놓았다. 12월 5일 시작돼서 오는 30일까지이니 다가오는 연말과 함께 며칠 남지 않은 그의 첫 전시는 그와 같은 시대발언 작업들을 위주로 전시를 꾸려온 오월미술관 기획 초대로 진행되고 있다. 언뜻 시사 카툰처럼 보이기도 하는 노주일 그림에는 절묘한 해학과 풍자, 함축된 깊이와 울림이 있다. 신랄하고 섬뜩하면서도 위트 있게 풀어내는 그만의 그림언어는 그래서 정감과 공감력이 높다. 그 날카로운 직시와 들끓는 분노, 일갈하고 싶은 차오르는 발언들을 그대로 내뱉어 버리기보다는, 내적 감정을 삭이고 흥분의 힘을 가라앉힌 가느다란 펜 선들을 무수하게 쌓아가며 전언하고픈 형상을 이루어낸다. 메시지는 선명하면서도 이를 위해 오랜 시간 쌓아낸 엄청난 공력에 정성에 진정성을 느끼고 그의 발언에 신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압권은 <녹슨 톱 메고 저승 길동무>(2021)이다. 얼마 전 민족사에 깊은 생채기로 남은 야욕의 광주 학살과 집권기 어두운 그늘들에 대해 한마디 사죄나 반성도 없이 초라한 말로로 돌연 세상을 떠난 전두환과, 일제강점기부터 독립운동 민족지사들에게 잔학한 만행을 자행했던 백선엽을 작가자신이 직접 역사의 집행관이 되어 저승으로 끌고 가는 호쾌한 풍자화다. 두 손 뒤로 묶인 채 멱살 잡힌 전두환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는 백선엽, 숱한 주검의 무덤들 저 멀리에 먼저 도착해 있는 결박당한 박정희의 모습이 가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림에서 넘쳐나는 힘은 작가의 호쾌한 표정이다. 기필코 해결했어야 할 역사의 단죄와 응징을 내 손으로 마침내 이루어내고야 마는 통쾌함이 ‘역사청산’ 붉은 머리띠를 두른 자화상 표정에서 속 시원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 붙인 쪽지에서 그는 “내 머리 위에 빛나는 진짜 별을 따라간다. 독립운동가와 열사의 넋들이 저승길을 환히 밝혀주며 춤을 춘다. 저승에 다다르면 녹슨 톱으로 피가 철철 나게 천천히 모가지를 썬다.”고 적어놓았다. 섬찟하면서도 통쾌한 것은 끝내 기대를 저버리고 떠나 파렴치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단호한 처단으로 대신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역사의식을 그림으로 풀어낸 작품 중에 <안중근, 박정희를 쏘다>(2021)를 들 수 있다. 조국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안 의사가 일본군 소좌로 친일 빈민족 행위에 가담했던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를 처단하는 상상도이다. 절지된 안 의사의 무명지에서 흐르는 피는 꽃잎 되어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안 의사 손가락 저격에 쓰러지는 다카키 마사오의 야수 같은 손가락 끝 핏방울들은 민족해방사 원혼들의 해골들이 되어 발밑에 쌓여져 있다. 앞 그림과 마찬가지로 실현되지 못한 역사의 과제를 그림으로 대신 풀어낸 작업이다. 친일반민족행위와 독립해방운동사의 작가 관점은 <감옥의 꿈>(2021), <좌파본능> 연작(2021) 등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그림 선배가 혹독한 고문의 연속이었던 수감생활 중 감옥 바닥에 긁어 새겨진 ‘대한독립만세’ 글씨를 발견하고 혼미해지는 정신을 다잡았던 얘기를 그림으로 옮겨낸 것이다. 그 선배는 감옥 벽에 숟가락 끝으로 ‘국가보안법 철폐’를 새기고 있고, 작은 쇠창살 밖 초롱초롱한 별무리들이 김구, 유관순 등등의 애국지사 원혼들로 모습을 바꿔 좁고 어두운 감방 안을 환희 밝히고 있다. <좌파본능>3~5 연작은 광주 일신방직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가네보공방 시절 유물들인 화력발전소와 고가수조, 방직공장 공간들을 탐방하면서 마주한 역사의 흔적을 펜그림으로 그려낸 것들이다. 오른손을 다쳐 익숙치 않은 왼손으로 비뚤대며 그림을 그려야했던 상황을 재치 있게 그림제목으로 붙였다. 더불어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좌파본능 1-꿈은 죽지 않는다>, “막 살다가 마음 체했을 때” 만나러 가곤 했던 백민미술관 매화나무는 <좌파본능 2>로 함께 전시되고 있다. 단지 회자되고 있는 꺼리나 이슈에 대한 비판 풍자로 자족하기보다 스스로 희망과 꿈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노주일의 주체의지는 <그림의 꿈>에서도 집약되어 나타난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반도에 올라앉은 갓난아이가 남과 북의 우주 기운들을 끌어 모아 주체통일을 외치는 모습이다. “깜깜한 바다 위 바위섬에 홀로 앉은 아기, 죽어간 별들의 염원과 피어나는 꽃들의 희망을 손가락 끝에 이어받아 고함친다. ”우리끼리 통일할라니까~ 다 꺼져라아~“라고 작업쪽지를 적어놓았다. 얽히고설킨 한반도 주변 상황과 강대국들 이해관계에 좌지우지 되는 국제정세에 나라의 운명을 맡기기보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순수영혼 같은 민족의 기운으로 우리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하자는 주체의식의 함축된 메시지인 것이다. 이 작품들 외에도 이전에 발표했던 <오월의 눈물꽃>(2020)이나 <팥쥐엄마의 그리움의 노래(2020), <아기고래의 꿈>(2017) 등등과, 작업에 공감하는 이들과 좀더 부담 없이 작품을 공유하고 싶어 준비한 디지털프린트 그림들이 이번 개인전 공간에 함께 전시되고 있다. 그림을 익힌 지 삼십여 년 만의 늦깎이 첫 개인전은 작가 자신에게도 소중하고 흥분되는 일이지만, 그의 진중한 활동과 역사의식, 시대현실 직관력, 메시지의 표현력을 높이 사는 주변인들에게도 퍽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작업의 주된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오른 손을 다치는 바람에 길지 않는 전시준비 기간이 충분하게 활용되지 못했고, 그래서 미완인 상태로 전시에 내놓은 작품도 있고, 이어가고 싶은 작업들이 남아 있는 상태다. 집약된 서사와 함축된 형상언어가 돋보이는 작업들을 모아 내년에는 책으로 엮어 낼 계획도 있다. ‘늦게 잡고 되게 친다.’는 말이 있다. 늦게야 주변의 부추김으로 겨우 저지른 첫 개인전이 그에게는 앞으로 작업에 더 기운을 돋우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절제되고 집약된 그림언어의 명징한 함축력과 전달력이 시각매체로서 기능만이 아닌 예술적 공감력과 울림을 더해가며 세상 속에 멋지게 펼쳐지는 그림의 꿈이 되길 기대한다. - 조인호(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노주일 <안중근, 박정희를 쏘다>, 2021, 종이에 수채, 펜, 116x91cm 노주일 <좌파본능 3, 4-일신방직 옛 화력발전소 안, 옛 고가수조>, 2021, 종이에 수채, 펜, 각 40.5x30cm 노주일 <감옥에서의 꿈>, 2021, 종이에 수채, 펜, 162.5x130.5cm 노주일 <그림의 꿈>, 2021, 종이에 수채, 펜, 162.5x130.5cm 전시도록에 실린 노주일의 작업모습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