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뿌리와 현세 반추로 전하는 세상평화 메시지 ; 이이남 미디어아트 특별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2-12-12 17:20 조회1,572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이남 <책 읽어주는 소녀>, 2022, 혼합매체, 3채널 비디오, 9분13초 자기뿌리와 현세 반추로 전하는 세상평화 메시지 이이남 미디어아트 특별전 2022.12.01-2023.04.30 / 광주시립미술관 미디어아트플랫폼 밝은 햇살을 뒤로한 채 입구 암막문을 열고 들어선 전시장에 갑자기 과거 기억의 한 지점으로 순간이동을 한 듯 어둠 속에서 하얀 소녀상이 책을 읽고 있다. 작가 육성으로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자전적 얘기들은 샘물처럼 무수한 글자들로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 목소리와 글자들은 넓은 벽면 가득 거친 필촉의 드로잉 영상과 그림 속 작은 TV의 영상으로 펼쳐지며 작가의 회상 속으로 이끌어 들인다. “나는 담양 사람입니다. 저의 이름은 이이남이고, 제 형은 이일남, 제 동생은 이삼남입니다. 제 위로 형이 한 분 더 있었다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중략) … 어렸을 때 집 앞 영산강에서 자주 멱도 감고 물고기도 잡았습니다. 형은 저보다 뭐든 잘 했지만 물고기는 제가 더 잘 잡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어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사촌형이 물이 얕아 괜찮다고 해서 발을 딛는 순간 미끄러지며 깊은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 무렵 죽음에 관한 꿈을 많이 꿨습니다…” 동서고금 명화들을 교합시키거나 미디어아트 영상예술 실험과 은유적인 서사의 시각화 작업을 계속해오던 그가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이 1인칭 화자가 되어 어린 시절 기억의 잔상과 현 세상 얘기들을 거대한 미디어아트 서사로 펼쳐 놓았다.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라는 이이남 미디어아트 특별전인데, 12월 1일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미디어아트플랫폼(G.MAP)에서 진행 중이다. 이이남의 기억의 첫 페이지는 <80년 5월 18일 날씨 맑음>으로 시작된다. 추억여행 통로를 밝히는 촛불영상 <기억의 뿌리>를 따라 들어가면 학교 운동장 같은 오색찬란 공간에 횃불을 든 소년상이 서 있고 맞은편에 수십 수백 선풍기들이 돌고 있다. 그의 유년 시절과 상장, 부모 형제, 5․18 당시 사진, 민주화운동 보도사진 등등이 회전각을 반복 작동하는 선풍기들마다 다다다다 부딪히며 소년을 향해 바람을 쏘아댄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농번기 방학도 아닌데 돌연 학교가 1주일 휴교하자 친구들과 들녘을 쏘다니며 마냥 즐거이 놀았다. 후에 알고 보니 엄청난 역사적 항쟁 희생의 날들이었고, 그 몸서리치는 기억은 이따금 순수동심과 잔혹한 세상의 무서움으로 소용돌이쳐 되살아나곤 한다. <어머니의 자장가>도 같은 주제의 소품 영상이다. 평온히 잠든 아이 위로 선풍기가 떠 있고 그 프로펠러 아래 흔들리며 매달린 전일빌딩 사진에는 굵은 총탄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다. 2층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장은 <책 읽어주는 소녀>다. 어둡고 넓은 전시실로 들어서면 책 읽어주는 소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 소녀 앞에 줄지어 놓인 앙증맞은 아이들 걸상에 앉아 소녀가 읽어주는 추억인 듯 현재인 듯 비몽사몽 곡면 스크린 영상세계로 녹아든다. “5학년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어요… (중략)… 다시 우리는 꿈을 꾸었어요. 우리 마을은 별처럼 빛났어요” 소녀가 읽어주는 얘기를 따라 몽환처럼 영상이 전개된다. 어슴푸레 떠오른 안견의 <몽유도원도> 흑백 수묵세계가 점차 화사하게 꽃피고 새들이 노닐다가 폭풍우 몰아치고 현란한 도시풍경이 오버랩 되더니 보쉬의 <쾌락의 정원> 기괴한 도상들이 떠다니고 전투기 폭격과 폭죽이 요란하게 뒤섞이는 현실 비현실이 혼재된 총천연색 채색화들로 펼쳐지다 이내 눈 내리고 하얀 적요로 뒤덮이는 한바탕의 몽상여행이다. 모네의 <노적가리>를 차용한 <볏단에 숨은 아이>는 어릴 적 담양 봉산면 고향 들녘 추억 얘기들을 영상과 회화로 결합시킨 작품이다. 낡은 걸상에 놓인 알루미늄 도시락통 속 영상과, 관람객들이 추억을 회상하거나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털어내도록 책걸상을 준비해 둔 <쓰고 버리는 편지>는 혼란스런 몽환경에서 벗어나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소소한 시간여행의 자리다. 한순간의 덧없는 그러나 더없이 황홀했던 꿈속 신선경을 노닐었던 어부가 현존공간에 깨어나 무릉도원으로 이르는 길을 찾는 듯 곽희의 <조춘도> 영상을 마주하고 있는 <달력의 그림자>도 거대 이야기 속 잔잔한 사색의 오솔길이다. 세 번째 장인 <뿌리-Rondanini Pieta>는 이번 전시의 클라이맥스다. 3층 전시실 넓은 벽면들과 바닥을 멀티스크린 삼아 가상공간을 펼치고, 그 영상세계 주인공으로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차용한 조각상이 서 있다. 이전에 여러 차례 전시에서 불러내었던 베드로성당 <피에타> 조각상과는 또 다른 극한의 비통함이 응축된 조각상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져 힘없이 늘어진 그리스도는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의 품을 떠나 승천하는 듯 떠오르고 있다. 혼령처럼 허공에 떠오른 그리스도의 형상은 한쪽 다리가 없는 상태인데, 그 육신의 일부가 마리아의 텅 빈 품에 생채기로 남아 있다. 인류 구원을 위해 모진 고통과 희생을 감수했던 예수와 성 가족의 아픔이 몇 배의 처절함으로 전이 되는 이 극한의 상황에 동서양 평화로운 산수풍경과 공포 가득한 전투기 굉음과 폭격 영상들이 감정상태를 최고조로 고양시키는데, 바닥 가득 무심한 물결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 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이이남의 이번 전시는 자신의 유년시절 기억과 지금의 세상을 중첩시킨 자전적 대 서사극이다. 1980년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순진무구 추억과 이후 당시 상황을 알고 난 뒤 다시 바라본 그 시점의 충격과 당혹감,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폭력과 무고한 희생들, 고통스럽고 불안정한 현실상황에 대한 혼란스러움, 이를 벗어난 평화로운 세상의 염원이 굵직한 단원들로 서술되어 있다. 이는 최근 자신의 정체성 탐구로서 본인 DNA코드 정보를 디지털소스로 집적시켜 미디어아트 영상으로 변환해내는 작업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자기 존재의 뿌리와 더불어 그에 얽힌 외적 환경과 상황에 대한 입체적 반추로 자신은 물론 세상의 실체, 그리고 향후 예술의 지향점을 재정립하려는 의지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이 명제는 한 사람의 현실존재이자 예술가로서 개인사적 삶의 화두이면서 또한 인류사라는 다차원 시공간의 흐름에서 보다 나은 미래세상을 바라는 인류 공동소망의 투영이라고 읽혀진다. 한 작가의 예술세계 흐름에서 어느 시점 중심화두와 주요 표현방식과 창작과 전시 여건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동서명화와 세상의 풍자와 시지각적 요소나 매체효과의 탐닉으로부터 그 모든 활동의 주체인 자신에게로 초점을 모으고 있는 이이남의 근래 작업에서 이번 개인전은 그에게 소중한 지점일 것이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자전적 스토리텔링으로 삶과 작업을 통시적이면서도 본질적으로 통찰하는 이번 전시는 그만큼 보다 굳건한 뿌리로부터 내실 있는 앞날을 엮어가려는 자기반추의 장이기 때문이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이이남 <소녀의 기도>, 개인전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전시 도입부 영상설치 이이남 <80년 5월 18일 날씨 맑음>, 2022, 혼합매체 가변설치 이이남 <80년 5월 18일 날씨 맑음>(부분), 2022, 혼합매체 가변설치 이이남 <책 읽어주는 소녀>, 2022, 혼합매체, 3채널 비디오, 9분13초 이이남 <볏단에 숨은 아이>, 2022, 혼합매체, 다중채널 비디오영상, 5분5초 이이남 <어머니의 자장가>, <쓰고 버리는 편지>, 2022, 혼합매체 설치 이이남 <달력의 그림자>, 2022, 혼합매체, 다중채널 비디오, 75인치 LED-TV, 5분 이이남 <뿌리-Rondanini Pieta>, 2022, 혼합매체, 단채널 비디오 설치 이이남 <뿌리-Rondanini Pieta>(부분), 2022, 혼합매체, 단채널 비디오 설치 이이남의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은 작가가 1인칭 주제가 되어 어린 시절을 회상하듯 이야기를 풀어간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