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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교감과 심상풍광의 시공간 ; 김재현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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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19-12-21 10:53 조회1,3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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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현.나무사이로.2019.캔버스에아크릴릭.50x150cm.원갤러리초대전.191220-.jpg
    김재현 <나무 사이로>,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50x150cm

     

    생명교감과 심상풍광의 시공간 ; 김재현 회화

    2019. 12. 20 12. 31 / 원갤러리 초대전

     

    인간의 시지각(視知覺, Visual Perception)은 눈으로 접한 유·무형의 이미지정보들을 순간적으로 합성해내는 조형감각과 관련이 있다.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시감각을 통해 지각되는 상은 눈앞에 보여지는 그 대상에 대한 해석과 판단뿐 아니라 이전의 경험이나 연상 또는 상상(Phantasma), ·불호, 감정반응들을 동시에 순간작용으로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질에 따라 이성적 인식이 앞서거나 감성과 감흥 정도에 좌우되기도 하지만 감각과 정신이 동시 가동되면서 심상적 재구성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그런 시지각의 이미지정보에 대한 자기반응을 현장에서 순발력 있게 담아내기도 하고, 그 지각된 이미지들을 모으고 압축하고 뽑아내어 최대한 충실하게 재현해 내거나 주관화된 표현형식으로 옮겨놓기도 한다. 외적 대상을 소재삼아 예술작품으로 제작해내는 과정은 결국 무수한 외부세계의 이미지정보들 가운데 작가가 포착하는 주관적인 관점과 의식과 감성의 반응을 각자의 조형언어로 집약시켜내는 작업이다.

    김재현.선물.2019.캔버스에아크릴릭.80.3x80.3cm.원갤러리초대전.191220-.jpg

    김재현의 회화세계는 인상적인 자연풍광에 대한 감흥과 교감이 주된 특징을 이루어 온 남도미술 전통과 따로 또 같이 관계되고 있다. 태양의 광휘, 생명의 약동을 화폭에 담아낸 오지호 화백이나 그 자연의 흥취를 주관화된 색채의 향연으로 이끌어낸 임직순 화백 등의 호남 인상주의 화맥과 무관하지 않으면서 또한 그와는 결을 달리하는 독자적 회화형식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감성적 태도에서는 같은 동류에 속하지만 화폭의 조형방식에서는 자연감흥의 조형적 패턴화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예술심리학자인 루돌프 아르하임(R.Arnheim)예술과 시지각에서 예술작품의 깊은 의미는 강렬하게 눈에 직접 호소하는 지각적 구조의 패턴에 있으며, 이 패턴은 형과 색의 조화이자 감각적 소재의 형식적인 구성이면서, 동시에 작품에 표현되어 있는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술은 의미로 충만된 상징적 구조로서 결코 단순 감각형식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김재현 회화는 단순 간결하게 구성된 색면 패턴이 특징이지만, 그렇다고 일러스트 같은 시각효과나 시감각만을 앞세우지는 않는다. 성장기 부안 시골마을을 둘러싼 삶의 환경과 그로부터 형성된 향수어린 추억들, 대학진학으로 옮기게 된 광주에서 수없이 오가며 저장시켜온 고향길 풍광들, 완주 대학 강단과 담양 시골집을 매일같이 왕래하며 일상이 된 일과 예술 사이의 자연이라는 터전들이 화폭의 시적 정취와 회화형식을 채워내는 것이다.

    김재현 회화에서 돋보이는 양식적 특징은 화폭의 공간감과 색채해석이다. 이는 내면과 일상에 펼쳐진 자연풍경들 속에서 지난날의 묵혀진 향수와, 생활 속의 시지각 경험들과, 순간순간 반응하는 미감들을 심상풍경으로 펼쳐낸 작업들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점이다. 특히 회화공간은 눈에 들어오는 일정 범위의 현장풍경이 아닌 오랜 시간 여러 장소에서 시지각적 체험으로 수집되고 저장되고 되살려져 화폭구성을 짜임새 있게 배치해낸 확장된 시공간이다. 그것은 시각디자인 전공과 한때 주업이었던 인테리어 작업들에서 몸에 배인 디자인적 감각의 공간해석인 것 같다. 화면을 넓게 채우는 산과 들과 키 큰 메타세콰이어들, 그 사이 아득한 한줄기 빛과 암시되는 마을이나 인물, 바람결 등등은 본래 형상이나 비례와 상관없이 화면구성에 따른 역할만큼씩의 넓이나 변형된 형태로 배치되고 있다.

    이 같은 화면효과를 위한 풍경의 공간해석은 색채표현에서도 마찬가지다. 순수예술로서 회화세계에 디자인감각의 색채효과가 결합된 것이기도 하지만, 구스타프 클림트, 임직순, 오승윤 등 선례가 될 만한 작품들을 참조하면서 자연과는 또 다른 화폭공간 안에서의 색채 구성과 균형, 조화, 순도 등을 탐구한다. 그것은 단지 색채감각의 유희가 아닌 화면색채 속에 빛과 대기감과 심리적 감흥, 시적 정취까지 용해시켜내는 작업이고, 화폭의 표면에 올려진 색채이기보다는 감성이 녹아든 색조의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김재현.환희.2019.캔버스에아크릴릭.72.7x72.7cm.원갤러리초대전.191220-.jpg

    화면공간을 이루는 색채들의 구성에서 또 하나의 공통된 특징은 넓은 색면의 투박하고 거친 마티에르와 형상의 암시정도 윤곽처리다. 평면에 꾸며지는 3차원적 깊이감(illusion)을 배제하는 대신 얇게 보일 수도 있는 화면에 가는 모래가루를 섞은 물감층을 몇 겹씩 덧쌓고 거친 붓질들로 풍경의 요소들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자연의 거대공간을 집약하되 그 안에 자리하는 소소한 형상들의 안과 밖 경계인 윤곽선을 무심한 듯 모호하게 흐트러뜨려 감성의 무한 울림을 시각화해내는 것이다.

    스테판 페퍼(Stephen C. Pepper)화폭은 일차적으로는 자연대상과 시지각적 또는 심리적 반응 사이의 물리적 매개물이면서, 지각한 것들이 축적된 직관적 미의 대상이 되고, 그 지각과 체험들의 축적이 현재의 지각체험과 융합되어 형상화된 결과물이라 하였다. 김재현 회화는 경험된 외적 풍경요소들을 단순 간결하게 재구성한다. 그러면서도 미적 체험과 현실풍경을 연결지어주는 연상코드인 형상들의 불확정성으로 회화적 깊이감과 감성의 여운을 대체하기 위해 중층적인 색면 처리와 함께 윤곽선을 규정짓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늦깎이 화가 김재현이 십오 년여 간 계속하고 있는 작업이 누드크로키이다. 2004년부터 토요일에 만나는 사람들’(약칭 토만사’)에 참여하여 크로키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는 뒤늦은 회화작업으로 연결되는 통로였으면서 현재도 현장실경보다는 단순 함축 위주의 심상풍경을 주로 하는 작업에서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실제 대상의 정확한 관찰력과 표현의 순발력, 회화적인 선묘의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거기에 시각적 변주로서 부분적인 색면을 곁들여 단순 습작 이상의 독자적 작품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접하는 자연풍광이든, 시지각으로 축적된 심상풍경이든, 무한 생명현상이 거듭되는 자연이라는 시공간은 심리적 평온과 정화와 치유를 안겨준다. 단지 펼쳐진 시각이미지가 아닌 정신과 감성에 접속되고 교감하는 생명작용으로서 자연풍경은 그만큼 일상 너머 생의 깊이를 일깨우면서 새로운 기운을 충만히 돋워주기도 한다. 김재현의 화폭에 재해석된 자연은 그 자체로서 회화적 시공간을 함축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보다 뚜렷이 하는 과제를 탐구 중이기도 하다. 군더더기 묘사를 털어낸 경물들의 단순 넓직한 색면처리와 중층적인 화면의 마티에르, 산뜻함을 더해주는 면분할 요소, 바람과 물결과 초목과 마을이 상상의 공간 속에 자유롭게 자리하는 운율적인 구성은 일정 패턴으로 양식화되지 않는 것도 스스로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무정 덕곡마을과 완주 봉동을 오가는 일상의 산자락과 들녘, 무시로 변화하는 허공과 존재들의 빛과 색감들과의 생명교감은 늘 무한세계로 열려 있는 작업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 위 그림 : 김재현 <선물>(꽃),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80.3x80.3cm

                   김재현 <환희>(풍경),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72.7x72.7cm

    김재현.여름풍경.2019.캔버스에아크릴릭.72.7x72.7cm.원갤러리초대전.191220-.jpg
    김재현 <여름풍경>, 2019,캔버스에 아크릴릭, 72.7x72.7cm

     

    김재현 작업실.무정면 덕곡.191122-49.jpg
    담양 무정면 덕곡마을 방앗간을 개조한 김재현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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