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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태 황정석 선후배 예술세계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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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문희영 작성일21-05-12 11:59 조회1,2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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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 다가가고 멀찍이 물러나는 전시사진 (13).jpg
    조정태 '적요' 연작

     

    조정태 황정석 선후배 예술세계조우

    2021.05.11-05.30 / 예술공간집

     

    가까이 다가가고, 멀찍이 물러나는

    두 작가의 시선, 그림으로 엮어가는 매듭

    가까이 다가가 깊이 들여다보고, 관조하듯 멀찍이 물러나 지긋이 보았다. 가까이 그려가는 것은 무엇이고, 몇 발자국 물러나 그려가는 것은 무엇일까. 한 세대의 차를 두고 있는 두 작가의 그림을 씨줄 날줄처럼 엮는다. 시간의 간극이 존재하지만 그림이 향하는 근원적 지점은 같은 곳이 아닐까. 두 작가의 내면에서 비롯된 그림은 다르고도 같은 시간과 공간, 그 모든 지점들을 엮는 매듭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황정석과 조정태 작가의 나이는 한 세대 정도의 차가 있다. 두 사람은 다른 시공간에서 다른 문화 속에서 자의식이 형성되었다. 이번 전시의 그림에 담긴 풍경들은 그들이 바라보는 현재의 시간이다. 황정석은 스스로 더 가까이 밀착된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봤고, 조정태는 긴 호흡을 잠시 고르듯 한걸음 물러나 현재를 바라본다. 전시라는 형식으로 조우된 그림들은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간다. 두 작가의 마음에 박힌 풍경은 하나의 씬scene이 되었고, 사회 속 무수한 내면을 들춘다. 두 작가의 서로 다른 시선이 만든 그림이 엮어가는 매듭은 무엇일까.

    밀착되고 각인된 장면들

    모조리 샅샅이 훑어갔다. 눈에 밀착된 풍경들은 그림에 빼곡하게 내려앉았다. 왜 이 장소들에 시선을 밀착하였을까. 그저 풍경 그림이라 하기엔 미심쩍은 냄새를 풍기는 그림, 장소를 알고 나면 미심쩍은 실체가 단박에 해갈된다. DMZ, 서대문형무소, 4수원지, 대전형무소 등의 장소를 그린 풍경이지만 풍경만이 아닌 그림들. 황정석은 이러한 역사적 장소들을 화면 안에 함축해낸다. 보이는 대상을 넘어 존재하는 대상으로서의 풍경이다. 90년대 생인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시간이 지나고 난 뒤 태어난 세대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시간을 품은 장소를 찾아가 보는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광주라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마주했던 많은 장소들은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긴 역사의 시간을 품은 장소들이 눈에 밀착되고 마음 안에 각인되었다. 실제 장소의 시공간을 내재화한 리얼리티를 구축해나가며 과거, 현재, 그리고 그 너머를 곱씹게 한다. 단절된 과거가 아닌 현재를 구축한 과거로 인식하며 그 시간들을 되뇌고 풍경의 공명을 파헤쳐간다. 더 깊이깊이 파고드는 시선은 또 다른 현재의 씬scene으로 함축된 풍경이 되었다. 사적史蹟장소는 그림의 정체성이자 작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열쇠이다. 마음이 향한 장소들은 그 곳의 시간과 역사를 그림 안에 머물게 했고, 지나온 시간의 의미들을 끝없이 되새기게 한다. 그렇게 그림 안에 더 깊이 오래도록 머물게 한다.

    그리지 않음으로 그려진 풍경들

    사소한 일상과 주변의 인물들, 조정태 작가의 그림에 담겨진 현재의 시선이다. 전시를 준비하며 몇 차례 작업실을 들렀다. 붓을 들고 있었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들을 차근차근 보았다. 오월의 핏빛이 채 아물지 않은 시기 대학 시절을 보내며 내내 혼란스러운 시간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붓을 놓지는 않았지만, 들끓는 현장 한 가운데에서의 목소리도 함께 보태는 시간도 꽤 길었다. 그가 그리던 일상과 주변의 인물들은 늘 함께였던 이들이고, 함께 가졌던 이념이었다.

    그렇게 내면의 바깥을 더 훑어가던 시선은 다시 작가의 마음으로 기울었다. 고향인 완도의 바다, 오랜 시간을 버텨온 나무의 생명력 등 변화를 감내하면서 변하지 않는 근원적 자연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지는 듯하다. 외형의 재현이 아닌, 심상의 재현이다. 모든 것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작가는 그림과의 대화를 이어간다. 생각하고 되뇌이며 휘저은 붓질은 긴 시간의 심상을 단박에 박혀낸다. 자연의 외형적 형상을 넘어 그 근원적 형상을 쫓는다. 그렇기에 조정태 작가의 그림은 걷고 또 걷는 과정이다. 늘 마음에 담아왔던 근원적 이미지들, 내내 작가의 뇌리에 여전히 존재했지만 아직 꺼내놓지 않은 내면의 이미지들을 조금씩 들추는 지점이랄 수 있다. 보이는 대상에 천착하던 시간을 넘어 그 상들을 하나하나 꺼내가며 보이는 것 너머의 시선을 향한다. 관성처럼 튀어나오는 재현의 손을 제어하고 감행하는 마음의 붓질은 더 큰 풍경을 만들어 가리라.

    같이 걷는 길, 공존의 시선으로

    가까이 다가가 밀착된 시선으로 현재의 풍경들을 읽어가는 황정석과 한걸음 물러나 너른 시선으로 포괄해가는 조정태 작가가 그리는 현재의 풍경들, 이렇게 중첩된 시선은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다르고도 같은 풍경은 다양하게 시대의 상을 들춰냈다. 한 작가의 사유를 관통하며 내밀하게 들춰진 풍경은 지극히 사사롭지만 공감을 이끄는 매개체가 된다. 삼십여 년 시간의 간극이지만 훗날 우리 모두는 같은 시대의 누군가이다. 세대를 넘어 교차하는 시선의 지점은 한 시대의 상으로 존재하며, 시간을 축적하고 시대를 대변하면서 계속 그려질 것이다. 빠르게 변화해가는 사회 안에서 서로 다른 시선이 스며들며 연결지점을 만들어간다. 작품 안의 이야기들이 매듭지은 연결지점은 또 다른 소통의 구멍을 뚫어준다. 세대를 넘어 한데 버무려지며 다름공존으로 이끌며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생성해나갈 수 있으리라.

    - 문희영(예술공간 집 대표

     

    가까이 다가가고 멀찍이 물러나는 전시사진 (10).jpg
    황정석의 사실묘법 풍경단상

     

    조정태.적요-푸른 煙.2021.캔버스에유화.72.7x90.9cm.jpg
    조정태 <적요-푸른 煙>, 2021, 캔버스에 유화, 72.7x90.9cm
    조정태.심월-1,2.2016~2021.캔버스에유화.116x80cm.jpg
    조정태 <심월-1, 2>, 2016~2021, 캔버스에 유화, 116x80cm
    황정석.미정(2).2020.종이에볼펜,수채.61.5cmx97cm.jpg
    황정석 <미정(2)>, 2020, 종이에 볼펜, 수채, 61.5cmx97cm
    황정석.검은볕;2019.종이에볼펜,수채.61.5cmx97cm.jpg
    황정석 <검은 볕>, 2019, 종이에 볼펜, 수채, 61.5cmx9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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