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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 김설아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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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송기현 작성일22-11-28 17:50 조회7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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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설아 초대전 '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 중 5부- '기억의 팔림프세스트' 일부

     

    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 김설아 초대전

    2022.11.16-2023.03.12 /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소멸하는 것들 사이에는 삶이 당면한 첨예한 문제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과 공포로 접촉되어 있었고, 되돌아갈 수 없는 감각으로 변이되어 있었다. 모두가 떠나도 여전히 남겨진 아주 작은 존재들과 본래의 몸으로부터 허물어진 채 이곳저곳을 부유하는 연약한 존재들에 나의 시선이 머물렀다. 나는 촉수와 같은 예민한 감각으로 벌레나 재 그리고 미생물과 같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것들의 움직임과 소리를 탐색하였고, 이를 가장 깊이 들여다본 응시의 힘으로 사라져버린 공간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고자 하였다. 이는 무엇보다도 언어화되지 못한 소리로 시대의 불안정을 증언하는 타자들의 떨림을 기록하고, 삶의 터전을 잃고 몸을 바꿔가며 되돌아오는 존재를 기억하고자 함이었으며, 곳곳에 번져 있는 폐허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다시 상상하고자 함이었다.” - 김설아의 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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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설아 <진동하는 고요>, 2016, 종이에 아크릴릭, 141x233cm

    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는 기록되지 못한 기억과 존재들의 흔적을 복원하는 작가 김설아의 작품 세계를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작가의 성장 발판으로 삼고자 마련되었다. 김설아는 상실의 경험을 공유하는 존재들을 자신의 기억에서 씨실과 날실로 직조하듯 복원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거대한 힘에 밀려 부유하는 작은 존재들이 사라진 공간에서의 기억을 소환하는 김설아의 경험적 기반을 추적해 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예술가의 시선은 어느 곳에 머물러야 하며 그 무엇을 보게 하는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작가 김설아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김설아에게 회화는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기록한 결과이다. 그 과정은 개인과 연관된 특정한 장소에서의 경험을 불러와 그 기억을 어떠한 대상에 사상(寫像, mapping)하여 은유하고 그렇게 형성된 이미지를 화폭에 소환하여 복원하는 것이다.

    레이코프와 존슨의 체험주의에서 경험은 우리를 인간(우리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구성하는 복합적인 상호작용 안에서 결합되는 신체적·사회적·언어적 존재)으로 만들어 주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작가의 작품 활동은 정신적/추상적 층위의 경험으로 작가의 신체적/물리적 층위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물리적 층위에 의해 강력하게 제약된다. 우리는 흔히 예술 활동을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몸의 활동에서 비롯된 확장적 구조물이며, 신체적 경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연속선상에 있다. 우리의 사고와 언어의 뿌리가 몸이며 경험의 발생적 측면에서 몸이 발생적 우선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일상적 활동에서 우리의 의식은 외부 세계에 지향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그 배경이 되는 몸은 우리의 의식에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잊혀진 몸은 비일상적인 상황이 되어 장애를 겪게 될 때 비로소 의식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김설아가 주목하는 몸에 대한 기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성되어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을 제약하게 된다. 작가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대상을 바라보더라도 작가의 고향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밀려난 경험과 기억은 작가의 시선을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작은 존재들에 주목하게 한다.

    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는 코란의 [엄폐의 장][두드리는 소리]의 장에 있는 구절에서 차용해 왔다. 숱한 산들이 흩어져 버릴 때, 숱한 영혼이 서로 껴맞춰질 때, 사람들이 흩어진 불나방처럼 되고, 산들이 쥐어뜯긴 양털처럼 되는 날의 일

    이번 전시에서는 김설아의 시선이 어느 곳에 서서 무엇을 바라보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가 두 발을 딛고 서서 바라보는 방향과 대상이 어디인가를 생각했다. 작가가 발 딛은 숱한 산은 오랜 시간 지층이 쌓이고 쌓여 형성된다. 김설아에게 산은 역사와 기억이 쌓여 형성된 단단하고 온전한 과거의 시간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쌓인 곳에서 작가가 바라본 것은 무언가 무너지고 흩어지는 자리였다.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과 대상을 선택했다고 믿지만, 그 선택의 과정은 우리의 과거 경험과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언가 쌓여 있다가 흩어지는 게 단지 절망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쌓여있던 것 역시 본래의 자리에서 온 것이고, 흩어진다는 것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는 흩어질 때가 되어 스스로 몸을 바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존재들을 오랫동안 응시한 작가가 왜 그 자리에서 머물며 허물어지는 자리를 응시하게 된 이유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전시는 작가가 머물렀던 장소와 시기에 따라 아홉 개의 검은 구멍’, ‘사자의 은유’, ‘진동하는 고요’, ‘눈물, 그 건조한 풍경’, ‘기억의 팔림프세스트5부로 구성된다. 작가의 최근 작품부터 시작해 인도 유학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작품의 신체적/물리적 경험의 기반이 되는 고향에서의 경험과 기억이 작가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정신적/추상적 층위의 경험으로 확장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아홉 개의 검은 구멍에서는 기능을 상실한 신체와 작은 존재가 연결되고, ‘사자의 은유에서는 물의 도시에 퍼져있는 곰팡이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마주한다. ‘진동하는 고요에서는 작가의 예민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눈물, 그 건조한 풍경에서는 사막 도시에 해마다 찾아오는 모래를 통해 밀려난 존재들이 다시 돌아와 목격되기를 바라고, ‘기억의 팔림프세스트에서는 작가의 시선이 왜 미시적인 존재들에 가닿게 됐는지 그 시작점에 도착하게 된다.

    이번 청년작가초대전 김설아-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를 통해 잊혀진 몸의 기억을 켜켜이 복원하는 작가 김설아의 작품 세계가 널리 알려져 광주를 대표하는 작가의 하나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작품에 나타나는 벌레의 몸 같은 형상이나, 촉수와 털이 돋아난 형상 등 기괴하고 강렬한 이미지에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물리적/신체적 경험의 기반을 마주하게 되면, 그 이미지 너머에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왜 머물렀는지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작가의 개인적인 과거이자 사적인 역사의 통로를 거치며 앞으로의 작품 활동을 예견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송기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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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설아 초대전 1부- '아홉개의 검은 구멍' 도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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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설아 초대전 1부- '아홉개의 검은 구멍' 중 <아홉개의 검은 구멍-숨소리>, 2020, 종이에 잉크, 230x600cm / <아홉개의 검은 구멍-흉흉>, 2020, 종이에 잉크, 240x4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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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설아 초대전 2부- '사자의 은유'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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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설아 초대전 2부- '사자의 은유' 중 <사자의 은유>, 2019, 실크에 잉크, 200x440cm와 영상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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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설아 초대전 3부- '진동하는 고요'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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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설아 초대전 4부- '눈물, 그 건조한 풍경'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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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설아 초대전 5부- '기억의 팔림프세스트' 중 <소리와 밀도를 위한 드로잉>, 2022, 종이에 디지털프린트 위에 수채, 40x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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