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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을 품은 한 획 ‘파랑’ ; 강운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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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3-03-21 13:50 조회7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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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운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장도전시관

     

    을 품은 한 획 파랑’ ; 강운 개인전

    2023.2.24-3.30 / 여수 예울마루 전도전시관

     

    섬에서 섬을 품은 한 호흡의 일획을 그었다. 그리고 세상살이 중의 이런저런 독백과 성찰과 상념을 두터운 물감면에 쓰고 칠하고 또 쓰며 마음산책을 화폭에 올렸다. 강운의 섬작업 반년을 담은 개인전이 여수 예울마루 장도도서관에서 파랑이라는 이름으로 224일부터 326일까지 열리고 있다. 예술섬 장도 레지던시 입주작가 전시회다. 지난해 9월 초에 들어와 3월 말에 섬 생활을 마감하기 전 그동안 반년의 또다른 세계에서의 성찰과 작업을 내보이는 전시다.

    예울마루 앞 큰길 건너편 입구에서 진섬다리로 200m 거리지만 그래도 바다는 바다인지라 물이 들고나는 때를 맞춰 오가야 하니 섬은 섬이다. 제법 드센 바닷바람 가르며 섬으로 건너가면 작은 어선들이 몇 척 매어져 있는 선창가에 하얀 레지던시 집들이 몇 동 있고, 더 깊숙이 섬 안으로 들어가면 장도전시관에 이르는데, 그 산책길 사이사이 나즈막한 언덕에는 매화며 복사꽃이며 화창한 봄날이 더없이 화사하다.

    섬 경사면에 자리한 장도전시관은 한쪽 입구는 약간 비탈지게 지하로 들어가고, 반대쪽은 솔숲과 바다 풍경과 함께하는 1층의 구조다. 전시실 안 한쪽에 통창을 내어 장도의 솔숲과 하늘이 내다보이게 해서 시야를 터주면서 자연채광과 전시조명이 어우러져 작품 색감들이 더 제 색을 낸다.

    한쪽 벽에는 파랑, 다른 벽에는 노랑으로 여수의 무인도와 유인도 360여 섬들을 품은 600여 점의 일획연작을 줄 맞춰 배치했다. 지도에서 따낸 각각의 섬 모양들을 스티커로 만들어 바닥에 깔고 그 위 물기 촉촉한 종이에 한 호흡으로 그은 획들이 노랑과 파랑의 섬 연작으로 펼쳐져 있다. 한 획을 긋는 그 시점의 습도와 온도, 종이의 습한 정도, 붓의 속도에 따라 그어지는 획의 기운이나 번짐, 우연찮게 만들어지는 기포의 모양들이 다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언뜻 같은 색깔의 일획 반복작업들로 보이지만 하나하나가 획의 색감이나 농도, 번지고 스민 현상들이 제각기 달라 보인다. 획을 긋는 건 작가의 의지이고 심신의 상태이자 행위지만 그 짧은 순간 작용하는 외부 환경과 자연조건들이 결합되어 작가 자신도 알 수 없는 결과들로 나타나게 된다. 그 한 점 한 점과 마주하는 이도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히 교감하다 보면 비정형의 추상회화 같은 한 획 안에서 오묘한 색채변화의 파랑 또는 노랑에 잠기듯 희미하게 드러나는 섬의 실루엣들을 느끼게 된다. 무인도는 파랑, 유인도는 노랑이라는데, 현상적 시각효과로 설정된 색채가 아닌 그의 오랜 삶의 축적과 기억과 경험과 상념들에 따라 마음에서 떠오른 심상의 색이다.

    강운의 일획연작이 한순간을 응축시켜낸 심신상태의 행위적 흔적이자 그 획을 둘러싼 기의 파동과의 결합이라면, ‘마음산책은 긴 시간 내면에서 일렁이거나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질문 답변과 독백, 성찰, 자기치유의 축적들이다. 일상 가운데 무시로 일어나는 아픈 기억과 우울감, 상념, 혼란스러운 심적 상태, 자기 위로와 깨우침이 하나하나 층위를 이루며 두텁고 거친 화폭들로 외화된 것들이다. 삶 속에서 느껴지는 무수한 번뇌와 웅얼거림과 자기극복 의지와 길 찾기들이 일기처럼 문장을 이루고, 그런 숱한 얘기들이 색층을 달리하고 방향을 바꿔가며 서술되다가 또 다른 색과 독백이 얹히다 보면 화면에는 읽을 수 없는, 읽히지 않는 수많은 삶의 단편들이 축적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리 상징화시켜 설정할 수 없는 그때그때 심상의 색들이 덧쌓이고 드러날 듯 말듯 생채기를 품은 거친 등걸 같은 화면으로 우러나게 된다. 그 화폭들은 수없이 덧쌓여진 서사적 속내와 상관없이 각기 다른 화폭들로 만나 옆으로 또는 위아래로 배치되어 넓은 심상풍경을 펼쳐낸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 사이사이 쉼의 공간들과 함께 배치된 이들 마음산책은 거칠면서도 잔잔하게, 때론 격하면서도 차분하게 마음의 대화를 청한다.

    그가 섬에서 담아낸 일획들은 실제 작업현장에서 더 생생하다. 장도 선창가 옛 어민들의 집터에 들어선 아담한 레지던시 스튜디오는 창밖 바다풍경과 그 건너 분주한 해안가 도시풍경과 섞이어 삶과 일정 거리를 두고 이어지기도, 떨어져 있기도 하다. 아담한 작업실 바닥에는 아직 마르지 않는 일획작업들이 줄지어져 있고, 각 획들 아래에는 그 안에 품은 섬의 이름들이 메모되어 있다. 숨을 담는다는 관념적 접근이 아닌 것은 한쪽 창에 정리되어 붙여진 여수의 유인도 무인도의 축소된 모양들과 이름들의 도표로 인정하게 된다. 합판을 올려 만든 임시 작업테이블에는 작업의 흔적이 담긴 푸른 물통과 넓직한 붓들이 휴식 중이다. 비록 현실공간과 지척에 있는 작은 섬이지만 이 섬에 들어와 있던 반년 동안 그는 참으로 귀한 시간을 가졌다 한다. 일상 밖 다른 공간에 옮겨진 자신을 객관화시켜보고, 그동안의 생활과 작업을 반추해 보면서 좀더 자신에게 침잠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광주 작업실과 장도를 격주로 오가면서 보낸 짧은 6개월여이지만 작업과 더불어 성찰과 충전을 동시에 가져볼 수 있었던 감사한 기간이었다 한다.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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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운 '일획' 파랑 연작. 장도전시관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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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운의 '일획' 파랑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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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운의 '일획' 노랑 연작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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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운의 '일획' 파랑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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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운의 예울마루 장도 레지던시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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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예술마루 장도 레지던시 시튜디오에서 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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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예술의 섬 장도와 진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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