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현실 사이 동시대 리얼리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4-06-12 10:41 조회1,41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은암미술관이 기획한 '낭만 소환 안내서' 전시물품 중 낭만과 현실 사이 동시대 리얼리티 은암미술관 기획전 ‘낭만소환안내서’; 5.30-6.20 낭만은 현실 너머 갖게 되는 여유로운 심사다. 당장의 현실에 맞서야 하거나 매여있지 않을 때 젖어 들 수 있는 감상적 태도다. 세월 지나 고달팠던 추억마저도 아득하게 떠오를 때, 주변 분위기가 한껏 문학적 서정에 취하게 하거나 몽환적으로 다가올 때 느끼는 심적 상태이기도 하다. 그렇게 낭만은 현실의 이면이면서 비현실적이기도 해서 서로 대척점에 있다. 고양된 내적 감정의 몰입과 냉철한 외적 현실 직시가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라는 전혀 다른 예술사조로 나타나듯이 말이다. 삶의 막장 같던 탄광들이 폐광에 이르고 수십 년 지탱해 온 마지막 연탄공장마저 사라지게 됐을 때 느끼는 반응도 현실적 걱정과 낭만적 감상으로 달리 나타난다. 연탄광이나 쌀통이 점점 비어 올 때의 초조와 불안, 싸늘한 방바닥만큼이나 웅크려 드는 고단한 일상을 이 풍요의 시대에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그랬던 시절을 추억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붉은 정열의 불꽃으로 불맛을 올려 술 한잔 풍미를 즐기는 낭만이 사라질 것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것이 현실이든 낭만이든 이제 연탄불 이야기는 민속박물관 전시자료나 추억팔이 축제, 또는 시인의 옛 싯귀를 통해서나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은암미술관이 최근 70년 역사를 끝으로 문 닫은 광주 전남지역 마지막 연탄공장 소식에서 실마리를 잡아 기획한 ‘낭만 소환’ 전시를 연다. 청춘의 대학가에서도 낭만이 사라진 지 오래인 지금 “도시 곳곳에 얽힌 시간과 공간의 흔적을 기억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동시대와 소통하는” 장치로서 전시를 열겠다고 한다. “사라져가는 도시의 오브제들로 기억 속에 현존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담아내며, 삶이 변화에 침체되지 않도록 다양한 시선들로 재해석하고 예술로 빛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연탄을 불씨 삼아 도시의 기억과 현재로부터 삶의 체취가 배인 현실과 낭만 사이의 연결고리를 덥혀보려는가 싶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는 나효지, 박래균, 양나희, 이설, 최옥수, 황재형 등 모두 6인의 작가가 낭만 소환의 매개자로 초대됐다. 언뜻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분모가 없을 듯하면서 원로 중진부터 청년작가까지 세대문화가 다르고, 마주하는 세상 현실과 인간 삶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다른 만큼 작품들의 성향도 각기 다르다. 나효지와 이설은 세심한 사실 묘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를 살짝 비틀어 은유와 상상을 곁들여놓는다. 나효지는 인공의 구조물인 폐건축물과 거기에 기대어 생장을 계속하는 녹색식물 생명 존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실재와 상상계를 조합시켜 놓는다. <시간 기억> <건물도감> 등은 폐공간에 담긴 서사와 유기체적인 시간성을 감정의 과장 없이 세필 사실의 변주로 담아 놓았다. 이설 또한 <사각지대> <Cut out> 등을 통해 일상의 단편이나 주변 공간이 퇴화되고 사라진 공허를 사실적인 서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우연찮은 상황을 마주하기라도 하듯 일상 밖으로 밀려난 폐공간과 고물이 된 인공물들을 삶의 퇴적처럼 드러내며 공허와 상실의 풍경을 묘사해 내었다. 양나희는 소시민들의 소박한 삶의 풍경을 골판지를 매재 삼아 화폭에 담아낸다. <삶, 풍경> <월산동 풍경>에서처럼 그가 바라보는 도시의 변두리 산동네나 골목길 풍경은 과장할 것 없는 중심 바깥 이웃들의 삶의 현장 그대로이면서 그 서정은 때로는 감상적 낭만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거기에 골판지로 차곡차곡 다듬어낸 애잔한 삶의 은유와 연민이 현실과 낭만 사이를 오가며 한 꺼플 비현실화된 사실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와는 달리 황재형의 가슴 저미는 삭막한 탄광촌 풍경은 그 참담함이 극대화되어 외려 고단한 현실 너머로 뭉클한 서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힘겨운 삶의 애환도 떨어져 바라보면 감상적 연민에 빠질 수 있지만 작가는 스스로 폐쇄된 시커먼 어둠의 세계에서 막다른 탄벽에 맞서 삶을 캐내던 고행의 시간들 그대로 화폭에 옮겨놓았다. <바람 그 너머> <실어증>은 폐광 이후 마른 숨소리마저 사라진 탄광촌의 혹독한 겨울풍경을 애잔하고도 절절한 현실풍경으로 담아내었다. 주관적 해석과 회화적 변용의 편차를 보이는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최옥수의 사진들은 감정의 가감 없이 일상의 현실 그대로를 정직하게 기록한 인생사의 단편들이다. 지금은 사라진 1980년대 담양 죽물시장이나 90년대 화순 복암 청풍의 탄광촌과 신안의 추곡수매장 등 전라도 곳곳에서 만난 진솔한 삶의 초상들은 세월 지나 이제는 남도인들의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시간의 창이 되고 있다. 현업이 예술 외부자라 할 박래균은 그런 현실의 간격을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로 삼아 연탄불 연시들을 상징화한 도상들로 풀어낸다. <따뜻한 연탄나무> <순이네 엄마> <슬픔 말리기> 등에서처럼 연탄불은 점점이 꽃이 되고, 밥공기를 수북이 채우고, 한가득 별무리가 되고, 품 너른 희망나무로 삶을 보듬어 온기를 지피는 추억의 기호들이 되어 심상세계를 수놓는다. 그가 간촐한 이미지로 걸러낸 조형언어들은 시어나 마찬가지 반추의 표상들이 되어 화면공간에 흩뿌려지듯 쓰여지고 있다. 현실을 냉철히 직시하는 것이나 그 실재를 인간적 연민과 감정이입으로 녹여내는 것이나 삶을 대하는 양면성일 수 있다. 똑같은 현실도 대하는 심적 상태나 상황에 따라 사실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단초가 되기도 하고 감정이나 감상의 진폭에 따른 격한 울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연탄불과 연탄공장은 감상적 추억을 건드리는 매개이면서 누군가에게는 팍팍한 삶의 현실 그대로의 실체일 수 있다. 마지막 연탄공장의 폐업에서 떠올린 낭만 소환, 그것은 감상적 연민만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이편과 저편을 되비춰보는 일깨움일 수 있을 것이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황재형 <바람, 그 너머>, 2005~2007, 캔버스에 유채, 72.7x53cm, 개인소장 최옥수 <가족들의 얼굴이 내 등을 저갱으로 밀어 넣어>, 1990년대 초반, 화순청풍갱에서 촬영 양나희 <샤이닝>, 2023, 골판지 부조 위에 유채, 80.3×116.8 이설 <환상의 나라>, 2016, 장지에 과슈, 194x260cm 나효지 <상어>, 2022, 장지에 먹, 흑연, 162.2x260.6cm 박래균 <슬픔 말리기>, 2023, 종이에 펜, 색연필, 92x66cm 은암미술관 기획전 '낭만 소환 안내서' 전시 일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