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달용의 ‘고백_와글와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옥조 작성일24-08-02 12:45 조회1,23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허달용 개인전 '고백_와글와글' 전시전경 중 일부 허달용의 ‘고백_와글와글’ 2024.07.24-08.04 / 양림미술관 화가 허달용은 외유내강형 예술가이다. 오랜 시간 그를 지켜 본 한 사람으로서 그의 언행에 묻어나는 품성이나 생각은 예상외로 유연하고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본업이 화가이지만 화실에 앉아 그림만 그리지는 않는다.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손짓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며 함께 ‘실천하는 예술운동가’였다. 이 시대의 부조리한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며 ‘행동하는 미술운동’을 앞장서서 펼쳐온 인물이다. 전국민족미술인협회,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광주민족예술인단체연합회 등 진보예술단체에 반세기 가까이 몸담아 온 대표적인 ‘민중미술작가’였다. 그런데 이런 이력과 달리 그가 펼쳐놓은 그림 속 세상은 너무나도 담담하고 평온하다. 아마도 그가 상상하고 지향한 세상을 그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여느 민중미술가처럼 사실적 화면으로 직설적 화법을 내뱉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화격으로 방향을 잡아왔다. 꽤 오래전 그의 개인전에서 마주하였던 작품 <야간 산행>은 ‘화가 허달용’의 내면과 외면을 꽉 채워 보여준 대표작으로 기억한다. 주제의 선정이나 화면의 구성, 달밤의 분위기가 서정시와다름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자화상일 것 같은 인물의 배치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재치 있고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격렬하고 치열하고 거칠어야 제격일 것 같은 민중미술가에게서 보는 예상 밖의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시대를 관통하여 증언한 대작 <산이 된 바보 노무현>과 같은 그림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에도 ‘화가 허달용’의 깊고 넓고 높은 관점을 무릎 치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근작에서 드러나는 화가 허달용의 메시지는 ‘더 겸손하게’로 좁혀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도 더 겸손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며,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가 최근 작품 속에 드러나 보인다. 지난 2020년 가진 개인전 <묘정(猫情)>에서 허달용의 시선은 낮고 좁은 생활 속 언저리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활 속 반려묘에 시선이 닿은 것. 작은 고양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비로소 알게 된 다양한 표정과 이미지를 화면에 차곡차곡 담아내었다. 이것은 국가폭력에 저항하고 정치권력에 비판의 주먹을 불끈 쥐었던 민중미술가가 세월을 따라 흘러오며 변화한 시각의 단면을 스스로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그림 속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곧바로 화가의 시선과 다름없이 읽혀진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시끄러운 세상, 요란한 사회를 바꾸겠다고 외치는 시민운동의 한 복판에서 거칠고 강렬한 표현으로 선동하였던 예술운동 부류와는 다른 차원의 생각을 화면에 풀어온 허달용 다운 ‘화면 변화’였다고 본다. 2024년 올해 전시회 주제는 ‘고백-와글와글’이다. 지난해 1월 1일 조선시대의 폐쇄적 관습과 사회풍조에 대해 비판적 어조의 시를 읊었던 시인 이옥(李鈺)의 시 ‘개구리 울음을 읊은 부(賦)’를 읽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한다. 동짓달 새벽 얼음을 껴안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고백’이란 조용하고 진실되고 바르며 참된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반면 ‘와글와글’은 온갖 것들이 난무하여 어지럽고 시끄러우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나 소리들을 표현한 의성어이다. 서로 상반된 의미와 이미지를 대입하여 허달용은 무엇을 들려주려 하는 것인가. 이번 전시회에서 허달용이 붓끝으로 끌어낸 소재는 인물과 동물, 식물(나무)그리고 상형문자 등 네 가지로 분류된다. 인물을 다룬 작품으로 <가시관을 쓴 예수>, <홍범도 장군>, <너는 누구길래>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의 고통, 홍범도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려 했던 현 정부의 우회적인 비판, 해야 할 일과 하고 있는 일이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 중 <고양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고양이가 아니다. <말>을 그린 그림은 섬세한 필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말의 휘날리는 갈기와 목덜미의 털을 세필로 그려 역동하는 백마의 기운을 돋구어 준다. 또 다른 <말> 그림은 눈물을 흘리는 듯한 말의 말 없는 표정이 압권이다. <표범>은 지금 막 화면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는 듯하고, <까마귀>는 나무에 지탱하는 발톱을 세밀하게 그려 시선을 끌어들이고 있다. 마치 고양이처럼 바글바글 와글와글 수다스런 모습과 앞으로 정진하며 달려가고픈 욕구와 하고픈 말이 많음에도 어쩔 수 없이 기다리는 민중을 화폭에 담은 것도 같다. ‘와글와글’은 고양이가 ‘버글버글’한 이미지 효과가 있고 매화보다 벚꽃이 만발한 것이 이 ‘와글와글’에 대한 느낌으로 마치 온천 거품이 ‘바글바글’ 막 끓어 올라오는 것이 연상된다. 허달용이 이처럼 다양한 소재의 작업을 반복하였던 이유는 민중미술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왜? 민중미술작가는 세상이 어지러운 시기에만 그림에 대한 열정이 더 배가되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한 것 같고, 돌이켜보면 이명박 박근혜 때와 같은 그런 사회를 없애려고 사회성 강한 진보적 미술운동을 한 것에 대한 회의감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야 되겠다는 변화와 전환의 심정으로 일상 속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그려왔다. 이는 궁극적으로 민중미술이라고 하는 화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의지일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워야 만 그림에 대한 열정이 나오는 것에 대한 회의감도 있고 세상에 대한 뜨거움을 느끼는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갈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 허달용’은 말한다 “이순(耳順)을 지난 나의 그림에서는 어떤 소리가 날까?, 내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분노하고 눈물 흘리며 쓴 글이 몇 개나 될까?” 이러한 벽면을 마주한 그가 그 벽을 깨고 나가려는 변화의 시도를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도 지속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최근까지 화폭에 담은 모든 시도를 화면에 우려낸 것이 상형문자 그림 ‘모멘토 모리(memento mori)’이다. 화면 가득 한글로 쓴 이 글자를 조형적으로 구성하여 표현함으로써 알을 깨고 나오듯 새로운 세상으로의 탈피를 하는 것이다. “겸손하게 살자”란 의미를 되새기며 “이순을 지난 내 그림에서는 어떤 소리가 날까?”를 고백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세상으로부터 받아온 ‘민중미술작가’란 선입견의 부담감을 털어내려는 몸부림이 붓끝에 모여져 있다. 그리고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모습도 감지된다. 부드러운 수묵화의 성향에 어울리게 유연하고 합리적인 민중미술운동으로 시대를 증언하여 온 허달용의 이번 전시 일성은 ‘겸손’이다. 모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그러므로 오늘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통한다.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비로소 오늘을 살 수 있기에 주어진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겠노라는 화가 허달용의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그림으로 존재했어?’라는 고백을 들어보자. - 김옥조 (남부대학교 겸임교수) 허달용 <와글와글>, 한지에 수묵 허달용 <묘정>(부분), 한지에 수묵채색 허달용 <메멘토 모리>, 한지에 수묵, 아크릴릭 허달용 <새>, 한지에 수묵 허달용 <월야관매>, 한지에 수묵 허달용 <사람에 충성하라>(부분), 한지에 수묵담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