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재미술상 수상작가 박문종 초대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정락 작성일24-11-07 08:54 조회128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의재미술관의 박문종 초대전 일부 의재미술상 수상작가 박문종 초대전 2024.11.1-12.25 / 의재미술관 ‘흙으로부터, 흙으로’ (생략) 붓을 잡은 모든 사람들처럼 그리는 데에 이유와 목적이 있겠지만, 박문종에게 그것은 그림의 원형에 조준되어 있다. 화가는 대상에 더 밀착했고, 맨몸으로 비비고 문대고 익히고 느꼈다. 그렇게 현실 바닥에 몸을 갈아서 사실성을 건졌다. 덕분에 세련된 조형미라 수식하기 어려운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사실적이고 즉물적인 인상을 남겼다. 그림에서 흙 냄새뿐만 아니라,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도 그 사실성이 불러온 결과다. 그의 작풍이 남도 화단의 쌓아온 고유한 미학과 미감을 벗어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게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그의 화풍은 수묵화의 근본을 끌어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략) 작품에는 형상적 요소와 더불어 기호나 글이 적지 않게 포진해 있다. 주로 한글이고, 문자를 형상화한 소위 ‘문자추상’과는 다르다. 그의 삶은 언제나 뜻과 생각을 생산하는 부단한 과정처럼 보였다. 글과의 관계는 작품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사실 그는 그림과 글을 엮은 책을 내기도 했던 문재(文才)다. 2008년에 ‘선술집’이란 제목의 책을 펴내어 술과 노동 그리고 삶을 이야기했다. 글(혹은 문자)은 또 다른 형상재료가 되어 그림을 이루는 중요한 모티브다. 한글의 자모가 사람이나 풀 혹은 집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한글로 촘촘하게 채운 화면들을 보자면, 화가는 화면을 일기장으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글을 막 깨친 아이들이 땅 위에 자신의 소망이나 배운 것들을 펼쳐놓는 것처럼 장난기와 진심이 동시에 드러난다. 나아가 화가는 뜻을 글자의 형상으로 땅에 던지듯 심었다. (중략) 그림 속에서 글과 기호는 시서화 일체라는 우리의 예술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형상성을 강조하고, 어렵지 않게 그림을 읽게 해 준다. 참고로 독일어 동사 ‘Lesen’은 읽다로 주로 해석되지만, 못지 않게 ‘수확하다(혹은 거두다)’라는 뜻을 중의적으로 갖추었다. 화가가 이런 뜻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미술은 심고 거두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글과 기호들은 그림 속에서 어느덧 사람이 되고, 논밭이 되고, 집이 되고, 세상이 된다. “ㅛ”라는 지도학(cartography)적 기호는 작품들을 관통하는 형상이다. 이 형상은 논에 모가 꽂힌 것을 기호화한 것이다. 화가는 왜 벼나 논을 그리는 대신에 기호를 넣었을까? 대체복무를 하던 시절 젊은 박문종은 지도를 그리는 일을 했단다. 그때의 기억이 사무쳤는지, 줄곧 그런 식으로 풍경을 그리게 되었다. 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도 마을도 풍경도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기호와 한글로 약호화되었다. 그렇다고 사실성을 버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호가 주는 강렬한 메시지는, 상세하고 그럴듯하게 그려진 재현보다 더 상징성을 더하면서 오히려 무엇을 재현했는지를 분명하게 해준다. 땅은 그렇게 인간의 삶을 만들어 주었고, 죽었을 때도 한 켠을 내주었다. 남도의 풍경은 그 역사가 만들어 놓은 현장이다. 남도의 풍경을 이루는 주요 요소는 그래서 땅(흙)과 사람이다. 이 맥락에서 박문종 화가가 그린 것은 땅의 초상화이자 인간의 풍경화가 된다. 삶이란 살아내야 할 운명이다. 남도에서의 삶은 그렇게 태어나 자란 곳의 운명과 새끼꼬듯이 얽혀있다. 그래서인지 남도의 흙빛은 피와 땀과 똥이 섞인 듯하다. 즉 지리학이나 토양학이 본 과학적 사실을 넘어, 인간의 운명과 사슬처럼 묶여 있다는 뜻이다. 작가는 땅과 인간을 한 몸으로 본다. 그것은 그 지역에서 붉어진 세계관이다. 남도는 그런 세계관으로 문명과 폭력의 역사에 반항하고 저항했다. 그래서 남도는 천형과 반역의 땅으로 각인되었다. 화가를 “농부화가”라 정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발을 딛고 먹고 사는 곳, 즉 땅이고, 그 땅을 덮고 있는 흙이다. 남도의 흙은 단순한 흙이 아니다. 오만가지의 가치를 품고 있다. 남도의 흙은 해와 달 그리고 땅이 내어준 것에 인간의 땀과 눈물, 피가 섞여 다져진 것이다. 담양군 수북면 궁산리 허름한 농가창고를 작업실 삼아 작업을 하는 화가는 말한다: “여기가 (미술)농사를 짓는 터이다.” 이렇듯 작업은 그에게 농사다. 관념적인 발언이 아니다. 그의 작법에는 오래 묵어 누런 종이(한지, 신문지, 골판지 등등)가 일반이고, 붓은 물론 호미, 풀, 돌, 나뭇가지 등이 손에 쥐어졌다. 그것으로 흙물을 뿌리거나 발랐다. 그리고 종이를 뚫거나 긁었다. 더하여 먹을 묵히고 삭혀서 ‘퇴묵’을 만들었고, 종지에 조금씩 덜어 찍었다. 작품의 완성이란 묵은 것들이 새 것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농사가 그렇듯이 물려받은 것들에서 매해 새 것을 얻는다. 그렇다고 이것을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허접한(?) 도구를 사용하는 화가의 작업을 도구에 준하여 저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 도구들은 절대로 녹녹한 것들이 아니다. 전승과 수련으로 익숙해진 재료나 도구와는 달리, 화가가 손에 쥔 재료들은 낯설고 거칠다. 그리고 화가의 의지에 쉽게 순응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작업은 더 까다롭고 난해해졌다. 화가는 이 도구들에서 인간의 의지와 자연의 섭리 사이의 갈등을 몸으로 체득했다. 그것도 어렵게... 이 과정 속에서 화가는 자연을 존중하고 의지의 절제를 배웠다. 그 결과가 작품이고, 작품이 펼쳐내는 작업의 현상들이다. 작법의 원초성은 시나브로 작품의 장르와 콘텐츠에도 발현된다. 무엇보다 농사짓듯 그려놓은 그림에는 “땅과 연애하는” 화가의 심리를 반영한다. 그만큼 땅에 대한 애절한 감정이 내용으로 터져 나온다. 화면은 (반듯이) 도려낸 논과 밭이다. 화면 속에 그려진 풍경은 땅의 초상화가 되고, 애인과 어머니의 벗은 몸으로도 드러난다. 그렇듯 땅은 화가에게 야한 존재다. 그 관능 속에 꿈을 꾸고 살아진다. 땅을 갈고 엎고 밟고 어루만지는 행위는 그래서 땅과의 성교다. “그는 농사짓듯이 그림 그리고 그림 그리듯이 농사짓는다. 그가 진술했듯이 그가 생산해 낸 쌀과 작품들은 그가 '땅에 연애 걸어'서 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들이다. 박문종 작업의 요체는 바로 이것, '땅에 연애 걸기'인 것이다.” 차디찬 논물 속에 발을 담그고 한 줌 모를 쥐고서 땅에 꽂는 일에서 작가는 자연과 인간과의 이종교배를 꿈꾼다. 이때 땅(논)은 어머니이자 여인이다. 물 댄 논에 가지런히 심어진 연약한 모들을 받아들여 가을의 풍성한 수확으로 내어주는 자궁이다. 부드러운 흙은 여성의 속살과 같아서 파릇하게 기를 세운 모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꽂힌 모들을 단단히 움켜잡아 키워나가는 논의 힘과 양분은 어미의 탯줄처럼 끈끈하고 단단하다. 그래서 화가는 땅을 어머니로 혹은 여인으로 바라본다. (이하 생략) - 김정락(미술사학자, 미술비평가) 박문종 <무등산>, 2024, 종이에 먹, 흙, 280x400cm 박문종 <춘설헌 2>, 2024, 종이에 먹, 채색, 147x140cm 박문종 <수북들에서 1>, 2018, 종이에 먹, 흙, 각 144x74cm 박문종 <꽃닢>, 2020, 종이에 먹, 143x75cm / <객토>, 2020, 종이에 먹, 흙, 220x140cm 의재미술관의 박문종 초대전 의재미술관의 박문종 초대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