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한국화 명작전; '마음, 예술가의 혼을 담은 한국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오병희 작성일25-06-01 11:50 조회31회 댓글0건 관련링크 다음글 목록 본문 남도 한국화단의 변화를 이끌었던 윤애근 양계남 김대원 작품 (왼쪽부터) 남도 한국화 명작전; '마음, 예술가의 혼을 담은 한국화' 2025.05.13-09.07 / 광주시립미술관 ≪마음, 예술가의 혼을 담은 한국화≫는 남도 한국화를 통해 다양한 의미를 지닌 미술의 진수를 감상아혹 그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전시는 남도 출신 한국화 1,2,3세대 원로 작고 작가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한국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작품, 재창조한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통해 남도 한국화를 소개하고자 하였다. 전시구성은 작품의 내용에 따라 3가지 주제로 나누었다. 첫 번째 주제는 동양사상에서 순수하고 깨끗함을 의미하는 ‘담백함墨’, 두 번째는 한국화의 전통에 감성적인 색을 넣어 氣를 강조한 작품으로 아름다움과 대중적인 친근함을 나타낸 ‘아름다움色’, 세 번째는 먹과 채색의 형식과 정신은 현대미술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러한 주제의 작품은 다양함을 뜻하는 ‘예술創’이다. 남도 한국화의 새로운 변화 남도진경산수와 단체 활동 1980년대는 모더니즘 미술에 영향을 받은 작품과 남도 진경산수 계열이 공존하는 시기로 채색과 수묵의 다양한 형식 변화가 나타난다. 또한 남도 한국화가는 한국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근간으로 현대적인 감각의 채색을 사용하여 기존의 남종화를 한층 발전시킨 새로운 양식의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그리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미술에 영향을 주어 한국화 분야에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민중미술 수묵화운동이 일어난다. 민중미술 수묵화 운동은 수묵이 한국화의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재료라는 1980년대 수묵화운동과 관련 있으며 남도에서 현실 참여적 작품을 그린 독특한 양식의 작품이다. 이와 함께 1980년대 남도 한국화단에는 다양한 형태의 단체들이 생겨나 남도 예술정신을 계승하고 한국화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였다. 1980년대 연진미술원 동문으로 이루어진 취묵회(1984), 아산 조방원의 화풍을 받은 목운 오견규, 동곡 조광섭, 석우 정재윤 등이 참여한 묵노회(1987), 묵진회(1989) 등 원로 대가들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단체가 결성된다. 이들은 우리 산천의 특질을 파악하고 독특한 조형 어법과 시각으로 남도 산수화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였다. 박행보는 대학과 도제식 교육을 통해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1981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에 출강하였으며 제자들은 문하생 모임인 취림회(翠林會, 1983)를 창설한다. 취림회 정회원으로 허희남, 김재일, 한상운, 조창현, 김영삼, 이상태, 허임석, 김근섭, 김정란 등 9명이었다. (중략) 대학 교육을 통한 새롭게 변한 한국화 (중략) 대학 교육과정을 통해 한국화 전공자가 나오게 된 시점은 1970년대 후반부터이다. 중고등학교 교직 경력이 있던 김형수가 1968년부터 대건신학대학(현 광주카톨릭대)(1968∼1980)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성묵회星墨會’를 지도하였으며 전남대학교(1988∼1996)에 출강하였다. 1976년부터 이창주, 양계남이 조선대학교 미술교육학과에 1977년 조방원, 1978년 박행보가 전남대학교 미술교육학과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80년부터 문장호가 전남대학교 미술교육과, 이창주가 조선대학교 미술교육과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또한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에 순수예술과 채색화를 기반으로 한 송계일, 윤애근 등이 들어온다. 전남대학교의 윤애근은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78년부터 춘추회 활동을 하였으며 남종화가 주류인 남도 화단에 채색화로 현대적인 조형의식을 선보였다. 송계일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에 재직하였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방의걸은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 재직한 20여년 재직 기간 동안 호남 한국화단에 새로운 양식을 도입한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허진은 남종화가 아닌 대담한 실험성과 깊이 있는 주제를 재해석해 내는 채색화 작업을 하고 있다. 방의걸의 수묵과 채색이 조화된 작품은 1980년대, 1990년대 전남대학교 문하생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허진은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삶에 대한 반성을 주제로 작업하였다. 이구용은 산을 소재로 전통 기법을 따르면서 존재의 본질과 근원에 고민하는 작업을 하였다. 조선대학교는 1981년 회화과를 운영하면서 양계남, 김대원 교수를 중심으로 한국화가를 양성한다. 조선대학교의 양계남, 김대원은 전통 남종화를 발전시킨 화려한 채색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작품을 그려 학생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양계남은 허백련에게 문인화를 구철우에게 서예를 배웠고 조선대학교 미술과를 졸업 후 교수가 되었다. 김대원은 조선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하고 1970년대 말 수묵담채의 실경산수를 거침없는 활달한 필치로 그렸다. 목포대학교와 호남대학교에서 미술학과가 개설되어 한국 화가가 배출된다. 목포대학교는 김천일, 박윤서, 호남대학교는 하철경이 교수로 제자를 양성한다. 김천일은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간송미술관 연구원을 지내면서 전통 회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호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김경주는 1980년대 수묵민중운동을 주도하였다. 1981년 ≪한국회화 청년작가 초대전≫에 초대를 받은 김대원, 박윤서, 박은용, 정인수 등 당시 청년 작가들은 실경을 그렸다. 이처럼 대학 교육이 활성화되면서 한국화에 대한 새로운 경향이 만들어졌으며 1980년대 중반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 출신 화가들이 모임을 만들고 화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중략) 1990년 이후 한국화 의의와 전망 199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수묵 전통, 채색화,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영향을 받은 다양한 장르의 한국화가 남도 화단에 등장하였다.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수용한 다양한 미술 주제와 양식이 남도 한국화에 적용된다. 특히 20~30대 청년 작가의 새로운 감성에 의해 남도 한국화는 한층 다양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1990년대 이후 남종화를 토대로 한 남도 한국화는 자연의 직접적인 사생을 통한 실경과 다양한 채색을 사용한 점이 특색이다. 1990년대 남도 한국화 전통은 자연의 직접적인 사생을 통한 실경산수화가 주도하였다.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들은 지리산, 남해안 일대 등 실경 위주의 작품을 제작하였고 1995년 10월 31일부터 11월 10일까지 궁동 예술의 거리 야외 전시장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전남대학교 한국화전공 ‘세발 까마귀회’는 1997년 창립한 이후 2010년까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정기전을 개최하면서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2000년대 이후 인간의 정신세계는 과거의 마음과 자연을 소중히 하는 생각에서 물질, 디지털, 기계에 익숙한 생각으로 사고방식이 전환되었다. 뉴미디어 디지털 사회에서 대중들은 인간과 자연, 삶의 근본을 묻는 전통 한국화를 이해하기 어려워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맞춰 남도 화가들은 전통에 새로운 이미지와 감각, 재료 등을 활용한 변화를 통해 남도 한국화의 전통적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하 생략) - 오병희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남도 한국화 명작전-마음, 예술가의 혼을 담은 한국화] 도록 글 중 일부 발췌 광주시립미술관 기획 '남도 한국화 명작전' 전시관 부분 허백련 <금강산도>(1940년대) 10폭 병풍 중 5, 6폭, 한지에 수묵담채, 118x395cm 중,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허림 <화조>(1930년대 후반) 10폭 중 1, 2폭, 비단에 채색, 103x215cm 중,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조방원 <귀로>, 한지에 수묵담채, 162.5x115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박행보 <금강산>, 2008, 한지에 수묵채색, 167x132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신영복 <추경>, 한지에 수묵채색, 126.3x130.4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이창주 <고사추일>, 1994, 한지에 수묵담채, 69x121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김형수 <아진>, 1962, 한지에 수묵담채, 137x205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