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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남웅 초대개인전 ‘바람을 위한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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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당금 작성일25-12-26 10:21 조회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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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남웅 <바람을 위한 드로잉>, 2025

     

    윤남웅 초대개인전 바람을 위한 드로잉

    2025.12.13-2026.01.10 / 예술이빽그라운드

     

    바람을 위한 드로잉전은 고향 진도로 귀향하여 거친 바람과 따가운 햇살 속에서 육체노동으로 땅을 일구며 살아온 화가의 지고지순한 시간의 기록이다. 이 전시는 단지 그림을 모은 회화전이 아니라, 하루의 노동과 계절의 순환이 스며 있는 땅굿을 펼치는 그림전이라 명하고 싶을 지경이다.

    화가의 귀향은 진도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육지로 밀려와 메마른 흙먼지를 일으킬 만큼 거칠고 푸석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는 거친 바람이 흙에 스며들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며 메마른 땅이 바다의 풍요를 흡수하여 단단하고 생명력을 토해낼 때까지 쉬지 않았다.

    윤남웅의 예술 또한 이 바람과 흙의 순환 속에서 경작되었다. 언뜻 보기엔 예술을 잠시 내려놓고 농부로 살아가는 사람처러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윤남웅에게 농사는 곧 예술이며, 그의 몸은 하루도 빠짐없이 바람과 흙의 흐름에 맞춰 움직였다. 지금도 여전히!

    마침내 그는 살기 위해 짓는 농사속에서 예술의 본질, 즉 자연과의 일체를 알아차린 도인처럼 스스로 그러하도록_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이치를 그림으로 뱉어내고 있다. 윤남웅은 더 이상 바람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바람이 된 화가다.

    기다림의 미학 _ 농사의 시간, 예술의 시간

    화가 윤남웅에게 농사는 몸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농사는 회화이고, 진도 섬바람은 생존이다. 이 둘의 상관관계는 윤남웅 예술의 본질이다. 그림은 농사의 생존으로 자라고, 농사는 그림의 여백을 만든다. 그의 선()은 바람의 결을, 그의 색은 흙의 온도를 닮았다. 씨를 뿌리고, 햇빛과 바람을 견디며, 스스로 익어가도록 내버려두는 일, 그는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안다. 그는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안다. 그 기다림은 선과 선이, 여백과 여백이, 색과 빛이 천천히 더께를 쌓아가는 시간이다.

    그의 그림은 월동배추밭에서, 고구마밭에서, 호박밭에서, 복숭아 나무에서, 무화과 속살에서 피어난다. 그 속에는 웅숭한 바람이 깃들어 있다. 그 기다림은 숙성과 발효를 거듭하며. 자연과 호흡의 속에서 시나브로 곰삭아진 사유(思惟)가 된다, 그의 회화는 형상이 아니라 흐름의 기록이며, 이미지를 넘어선 명상의 드로잉이다.

    바람과 함께 노는 자에서, 바람을 위해 그리는 자로

    윤남웅의 예술 여정은 바람과 함께 노는 화가에서 바람을 그리는 화가로의 전환이다. 그의 전작 바람 그리고 놀다는 바람과 인간의 관계를 유희적이고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면, ’바람을 위한 드로잉은 훨씬 더 침묵과 내면의 세계에 닿아 있다. 이제 그는 바람을 관찰하거나 배현하지 않는다. 그는 땅 한가운데에서 바람이 스스로 지나가도록 몸을 내어 준다.

    그림은 자연을 향한 제의(祭儀)이고, 윤남웅은 그 제의의 사제가 되어 바람의 몸을 빌려 색을 섞고, 빛을 발하며, 투박하게 몸을 낮춘다. 툰드라의 바람이 언 땅 위를 지나가듯, 진도 앞바다의 바람은 그의 몸을 통해 삶을 지속하게 한다.

    <바람을 위한 드로잉>(2025)은 언어 이전의 언어와 같은 추상적인 도상에는 상여를 매는 사람들, 춤추는 사람, 게의 형상, 없을 , 고통의 와 같은 상형문자가 보인다. 검은 바탕 위의 흰 선, 반복된 기호로 인물들을 도상해서 수천년전 자연과 인간의 원초적 언어를 새겨놓은 고대 벽화와도 같다. 또 다른 <바람을 위한 드로잉>(2025)은 파람 바람에 몸을 활짝 열고 자연과의 합일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은 단순하지만 명상적 평온이 느껴진다. 팔의 길이만큼 넓어진 마음, 활짝 열린 몸의 형상 너머 바람 같이 보인다.

    <노랑색 풀이 된 남자>(2025)는 땅에서 자란 풀이 두 팔을 힘껏 벌려 파란 바람 수액을 끌어올린 인물의 몸 안 가득 뿌리를 내리고 있다. 풀인지 땅인지 사람인지 바람인지 그림인지 농사인지... 그림 속 이미지는 날개를 펼치듯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있다. 이는 작가의 은유다. 틀을 벗어난, 틀에 갇히지 않는, 틀이 없는... 무한히 자유한 땅의 여신같은!

    우주의 샤먼 의식을 치르는 윤남웅의 <바람을 위한 드로잉>은 바람과 땅과 사람의 합일을 시각화한 생명예술이다. 그의 그림 속에는 땅의 무게, 바람의 떨림, 인간의 호흡이 함께 존재한다.

    그림은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나를 통해 지나가는 걸 알아차릴 뿐이다.”

    윤남웅 화가의 생태예술론이며, 우주작 삶의 태도다. 이번 전시 바람을 위한 드로잉은 예술 본래 의미- 살아 있음의 미학, 자연과의 교감, 존재의 순환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 이당금 (예술이빽그라운드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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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남웅 <바람을 위한 드로잉> 연작,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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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남웅 <바람을 위한 드로잉> 연작, 20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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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남웅 <노랑색 풀이 된 남자>,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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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남웅 <또 다른 꽃>,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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