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승 개인전 '운주로 가는 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6-02-27 11:53 조회70회 댓글0건 관련링크 다음글 목록 본문 장희승 <진광불휘(眞光不輝)-석조불감>,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45x145cm 시공 너머 대동세상 밝히는 미륵정토의 빛 2026.02.26-03.04, 무등갤러리 세상 가운데서 마주하는 현실은 늘 희비의 연속이지만 안타까움과 연민도 많다. 정희승이 ‘도원 가는 길’(2009), ‘나는 너다’(2021) 개인전과 그 사이사이 여러 전시를 통해 보여준 것은 숱한 세상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냉철한 직시만이 아닌 그에 대해 가슴으로 품어 안는 연민과 공감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특히 ‘나는 너다’ 주제 연작들에서는 나라 안팎의 뉴스를 접하며 드는 충격과 분노와 비감, 애잔함 등등 시대사와 함께하며 느낀 세상 풍경의 회화적 기록이면서, 그런 시대 속에 함께 생을 꾸려가는 주변 동료들의 동병상린 초상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현실과 시대 상황, 가족과 지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현존재와 역할, 나아갈 길을 자문자답하는 성찰의 빛 자화상을 여러 점 보여주었다. 그런 정희승의 회화가 최근 몇 년 동안 세상 번민으로부터 눈을 돌려 피안의 빛을 찾고 있었다. 온갖 파열음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현시대로부터의 애증(愛憎)과 희비(喜悲)를 묵직하게 잡아주면서 그로부터 심기일전 새롭게 길을 나설만한 마음의 중심자리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이번 개인전 ‘운주로 가는 길’은 지나간 옛것에 대한 회고 취미나 향수가 아닌 몇백 년 시공을 뛰어넘어 현재를 되비춰보게 하는 역사의 큰 울림을 다시 마주하고 싶어 마련한 전시다.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세간의 속기(俗氣)를 넘어 신묘한 기운이 감도는 곳 운주골, 혼돈의 세상에서 벗어나 복덕과 평안의 안식처가 절실했던 민초들이 자신들의 심신을 투영해가며 탈속의 미륵정토, 용화세상(龍華世上)을 이루고자 했던 그 간절함을 지금 이 시대로 길을 트고자 한 것이다. 정희승은 이승 밖 또 다른 세계라 할 운주골의 산자락, 골짜기, 바위 그늘 곳곳에 몸뚱이를 잃은 채 널브러진 불두, 깨지고 패이고 뭉개진 석불의 두상들에서 광주 오월의 처절한 투쟁과 상처를 떠올렸다. 사적 욕망이나 이름도 남김없이 자신들을 온전히 바쳐 이루고자 했던 정의로운 세상, 민중이 주체가 되는 대동세상을 운주와 광주에서 공통되게 읽어내었다. 그렇게 몇 년을 무수히 거듭해 온 불두 작업들은 모진 세월 갖은 풍상을 견디어 낸 이 땅 역사 속 민초와 오월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경의의 회화적 표현이다. 제대로 체형을 갖춘 불상들보다 깨져 성치 못한 불두에 더 관심을 집중한 것도 소망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다 스러져 간 무명 존재들에 대한 추념과 애잔함이 더했기 때문이다. 깨져 성한 데 없는 불두들을 ‘미륵’이라 칭한 것도 무지렁이 초상들을 굳이 부처라 부르기보다 현 상태를 넘어서려는 민중의 염원을 미래불 신앙과 융합시키고 대동세상의 주체들로 승화시킨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들 민중들이 저마다의 소망을 모아 끝끝내 이루고자 했던 용화세계는 ‘미륵바다’로 개벽세상을 맞이한다. 거친 세상을 덮고 산등성이까지 차오른 새로운 기운이 물결치며 밀려들어 와불을 띄우는 ‘미륵바다’는 이고득락(離苦得樂) 세상의 대변혁을 희망하는 정희승의 묵언 웅변이다. 그가 작가 노트에서 말한 “어지러운 세상, 도탄에 빠진 민중들이 미륵의 도래를 염원했듯이, 오늘 다시 개벽세상을 꿈꾸어 본다. 미륵이 오시는 날, 아픔 가득한 그 바다도 모든 원한이 풀어지는 해원(解寃)의 바다”를 그림으로 펼쳐낸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일시적 즉흥보다는 긴 시간 켜켜이 쌓아 올리는 열념(熱念)과 정성의 과정들이다. 운주골 이곳저곳을 살피고, 현장의 기운을 가슴에 품고, 이를 스케치와 사진으로 담고, 목탄이나 파스텔, 콘테, 수채로 밑그림을 그리고, 담아낼 기운에 따라 소품이나 큰 캔버스에 옮겨 그 무언의 울림을 펼쳐낸다. 각각의 석불이 담고 있는 울림에 따라 흑백으로 또는 채색으로 옷을 입힌다. 어떤 경우는 그 울림을 소품에서 대작으로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 그림들은 운주골 현장에서 마주했던 불두가 대부분이지만, 더러는 연작 작업 중에 새로 탄생되어 세상 풍파에 사라진 천불의 빈자리를 채우기도 한다. 정희승의 작업 중 ‘진광불휘’(眞光不輝) 연작, 즉 ‘참된 빛은 번쩍이지 않는다’ 주제는 운주골 중앙의 석조불감 부처와 골짜기 곳곳에 둘러선 석불군에서 그가 읽어낸 지혜의 경구(警句)이면서, 그의 세상살이나 작업에 대한 태도를 함축한 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운주사 석불에서 배어나는 묵직한 존재감, 그건 요란한 세상에 찬연(燦然)히 번지는 광명의 진수이자 내면의 성찰로 이끄는 깨달음의 광휘이다. 일상과 작업에서 격정이나 분주함보다는 부단히 정진하면서도 과묵하게 내면에 침잠하는 작가 자신의 심성과도 상통하는 주제다. 고단한 중생을 미지의 미륵정토로 이끄는 불감 속 부처를 배알하고 화폭에 정성껏 모시면서 정희승이 간구(懇求)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다사다난한 세상살이 중에 혹여 미혹(迷惑)에 흔들림 없이 더불어 참된 빛을 찾아가자는 세상을 향한 권유이자 스스로의 재다짐일 수도 있다. 이번 운주사 미륵골 작업은 정희승의 작업흐름에서 보면 세간으로부터 잠시 눈을 돌려 성속(聖俗)이 함께 하는 그곳으로 향한 반추의 행보들이다. 그러면서도 시공을 초월한 염원의 세계이긴 하되 지금의 이 세상과 완전 동떨어진 옛 유적이거나 피안의 이상향이기보다 현재와 통할 수 있는 의미라는 점에서 그의 현실주의 관점은 여전히 연결되고 있다. 인생 60갑자를 한바퀴 지나고 화업 40년을 넘어서기까지 줄곧 현실주의 회화세계를 탐구해 왔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초심자의 자세로 앞날의 회화는 어디로 향할지 마음자리에서부터 되짚어보는 성찰의 시간인 셈이다. 그동안 운주사 석불을 다룬 화가들은 여럿이다. 대부분 토속적이고 진솔하고 정감있고 꼭 종교적인 신성물만이 아닌 민초들과 닮고 미지의 세계로 개벽을 꿈꾸는 주체들의 이상세계라는 설화와 서사성까지 더해지면서 친근하고 매력적인 소재로 여겼다. 정희승의 운주골 미륵들도 마찬가지로 공통된 관점과 의미 부여이긴 하면서 그만의 회화적 묘법들로 차별성을 갖는다. 지금 세상에 투영될 만한 역사적 의미와 조형적 특성들이 그만의 내적 성찰과 회화적 각색과 연출로 또 다른 빛을 발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더 머무르기엔 소재부터가 현재와 너무 멀고, 의미나 조형적인 면에서 많이들 익숙한 소재이고, 다른 이들 작업과 중첩된다는 점에서 한 시절의 몰입으로 족했으면 한다. 오히려 그의 회화 바탕에 흐르는 동시대를 통찰하고 가슴으로 품어 화폭에 풀어내는 현실주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그만의 독자 어법으로 드러내고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들이 더 정희승답지 않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정희승 <미륵바다>,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62x259cm 정희승 <돌과 꽃>,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00x100cm 정희승 <미륵>, 2022, 캔버스에 아크릴, 53x41cm 정희승 <미륵>, 2022, 종이에 콘테, 53x41cm 정희승 <운주, 구름배>, 2022, 캔버스에 아크릴, 162x390cm 정희승 개인전 '운주 가는 길' 중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