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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류가 흐르는 송필용의 '수류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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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09-06-10 18:27 조회8,8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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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류 風流가 흐르는 사의화 似意畵의 세계

    - 송필용의 水流花開 

    2009. 6.9-24, 광주 시안갤러리 초대전


    송필용의 회화작업은 한국 전통문화 속에 녹아 흐르는 고아한 풍류와 풍취를 되살려내는데 근간을 두고 있다. 강호에 묻혀 산수자연과 더불어 신심을 가다듬으며 자연 철리의 변화와 감흥을 필묵으로 풀어내고, 세간의 부침과 변화를 생태적 자연환경 속에서 관조하고 통찰하던 옛 선비들의 호연지기를 되비춰내고 있다. 말하자면, 옛 문인화가들의 묵향 짙은 시심을 지금의 회화형식으로 돋우어 내어 현란한 시각이미지와 개념들이 온ㆍ오프로 난무하는 디지털문화시대에 자연 본래의 생명기운과 회화적 서정을 펼쳐내는 작업이다.


    그 같은 회화세계의 바탕은 이번 열여섯 번째 개인전을 갖기까지 우리 고유 문화원형으로부터 자양분을 찾고, 우리의 감성으로 역사 현실과 문화를 교감하고자 하는 초지일관의 작업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비록 층위 없이 스며들고 우러나며 물들여지는 지필묵의 풍취는 아니더라도, 두툼하고 끈적이는 현대식 안료들로 화필도 감흥도 청산의 유수처럼 막힘없이 풀어내려 한다. 특히, 전통 민화에 배인 진득한 토속정서와, 겸재 진경산수의 넘치는 생기와 현장감흥을 풀어내는 대범한 준법과 화면운용, 시적 운치가 배어나는 문인화나 호남 남화의 화경, 사시사철을 달리하는 산세와 물빛에 스무 번쯤은 취해 본 금강산의 만화경 속에서 그의 회화적 자산들을 꾸준히 축적시켜 오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흐르는 물처럼’ 연작들도 그가 10여 년 전부터 천착해 온 소쇄원을 비롯한 무등산 자락 ‘가사문화의 시정’과, 진경에 새롭게 눈을 뜨개 되었던 금강산 화필기행, 옛 묵죽도를 차용한 녹죽 그림들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면서도 소재나 화면구성 형식에서는 ‘월매도’나 ‘관폭도’를 재해석한 송필용류의 풍류도가 중심을 이루면서 대부분의 작품에 산수소재로서의 ‘물’이 공통된 화재로 흐르고 있다.


    사실 물은 최근 송필용 회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화재이다. 2007년의 ‘상선약수 上善若水’(이화익 갤러리)나, 2008년 ‘폭포는 언제나 곧다’(이상 갤러리)에서도 그랬듯이 물은 그의 문학적 서정과 회화적 감흥을 풀어내는 줄기라 할 수 있고, 지천명을 넘어서면서 더욱 분명해진 세상순리와 삶의 유연성에 관한 자기반추의 거울이기도 하다. 즉, 자연 이치이자 생명의 근원이면서, 세상 살아가는 지혜의 표본이기도 한 물은 세상과 스스로를 비춰보는 대상이자, 하나로 체화되는 거울 같은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물은 ‘생명의 순환’ 연작에서 볼 수 있듯이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세상과 삶의 모습처럼 그윽한 달빛아래 매화를 머금은 평온한 수면이 되기도 하고, 수직낙하로 호탕하게 작렬하며 휘모리를 일으키는 폭포수가 되기도 하며, 푸른 달빛 아래 굽이져 흐르는 실오라기 같은 물줄기인가 하면, 어쩔 때는 소용돌이치는 세상 속 고난의 현실을 박차고 쉼 없이 꿈을 찾아 거슬러 오르는 등용의 물길을 열기도 한다.


    그 물 그림들에는 ‘달빛폭포’ ‘달빛 매화’들처럼 딱히 무엇이 주인이랄 것도 없이 달과 매화가 항시 함께 등장한다. 물론 달빛은 화면을 가득 비추는 만월이 대부분이지만 어슴프레 초승달부터 상현, 하현, 그믐달까지 천지 시공간에 물처럼 흐르면서 폭포수를 둘러서기도 하고, 오랜 친구인 매화가지에 걸치기도 한다. 이와 힘께 대부분의 그림들마다 등장하는 빛나는 보름달들은 사실은 들여다보면 고달픈 세상사를 비추듯 두텁게 얽어진 필촉들로 주름져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위로와 포용의 넉넉함으로 더없이 정겹기만 하다.


    송필용 회화에서 물과 달과 더불어 뗄 수 없는 삼우 중에 하나인 매화는 달빛아래 함박눈처럼 흩날리면서 ‘매화도 눈 같고 눈도 매화 같은…’(梅花如雪雪如梅花, 서거정) 달밤의 몽환적 정취를 돋우어 준다. 수면에 거의 닿을 듯 말 듯 사선으로 내리뻗거나 무지개처럼 휘어져 화면을 두르기도 하면서 이슬 촉촉한 밤공기에 매화꽃잎 아련히 흩날리는 월매의 서정이 짙기만 하다. 이 같은 매화의 연정은 아스라한 물소리와 더불어 매화가지 사이로 노니는 휘파람새들로 더없이 애틋해지고, 달빛 아래 세상을 연분홍으로 물들이다가 급기야 붉은 노을 같은 보름달로 달아오를 즈음에 이르면 매화의 정념은 더없이 뜨거워진다. 물론, 생명의 순환이 청춘의 열락(悅樂)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수백 년 성상을 피고 지며 세월의 깊이대로 뼈골이 드러날 지경의 늙음에 이르면 새삼 그 삶에 숙연해 지기도 하는데, 비록 늙어 굽은 몸이지만 휘영청 밝은 달빛을 벗 삼아 시린 눈 한껏 얹고서도 본래의 품덕을 잃지 않고 매향을 피워내어 고고한 선비의 기품을 다하기도 한다.


    이번 출품작 중에는 금강산 기행에서 화재를 취해 온 ‘일월오봉도’가 섞여 있다. 겸재의 <금강전도> 수직준을 보는 듯, 대범하게 필선들을 내려 그으며 북송 거비파처럼 아득한 물안개 위로 마치 승천하듯 솟구쳐 오르는 봉우리들을 무리 짓고, 그 개골산 골짜기에도 예외 없이 실낱같은 폭포수가 흘러내리도록 하여 일월과 더불어 멈추지 않는 생명의 순환을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이와는 대조적으로 굼슬굼슬한 토산형태의 눈 쌓인 능선들을 굵은 필선들로 둘러 세워 옥빛 호수를 싸안도록 묘사한 <물염정>에서는 산등성이에 걸친 태양과 호수에 비친 태양이 서로 조응하며 천지간의 경계를 없애고 있다.  


    송필용의 이번 ‘월하수류화개 (月下水流花開)’ 연작들은 확실히 그의 회화세계의 주된 관심이 실경 이상의 사의성(似意性)을 담아내는데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 산수ㆍ화조도에서 소재나 화면구성 방식을 빌려오기도 하지만, 그 바탕에 깔려있는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금의 회화형식으로 재해석해내고, 그 맥락에서 예술과 삶의 물길을 터 나가고자 하는 의식의 표현들이다. 즉, 서로 맞서거나 나누어 선 대상으로서 경물이 아닌, 물아의 경계를 두지 않는 일체로서의 자연과, 문명사회 속 일상의 시간개념이나 분별과 상관없이 본래 우주자연의 이법 그대로 생멸과 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자연으로부터 삶의 초연한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구도적 자세라고도 할 수 있다. 자연과 더불어 운치가 있는 그림을 경영해내고, 사람들의 가슴에 시심과 감흥을 돋우고, 무시로 흔들리는 세간사에 풍류의 멋을 띄워내면서, 옛 탈속한 처사는 아닐지라도 인생사의 연륜이 깊어지다 보면 그의 화필도 더불어 깊은 향으로 무르익어 가리라고 본다. 


    시안갤러리 / 062-573-0177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45-6 빅마트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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