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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학의 '반사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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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1-11-19 13:10 조회9,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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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운학 <쉼>(2008), <자루>(2009), <Flying>(2007) 연작들. 플라스틱에 채색


    ▲ 정운학 <기억의 공간>(2007) 혼합재. 각 35x27x10cm



    ▲ 정운학 <Flying Shoes>(2011) 혼합재. 각 33x25x10cm, 29x18x11cm



    ▲ 정운학 <춤>(2011) 혼합재. 각 185x32x27cm



    ▲ 정운학 <책이야기>(2011) 혼합재료, 36x74cm



    ▲ 정운학 <신문>(2011) 혼합재료, 87x114cm



    정운학반사 풍경


    정운학의 일곱 번째 개인전이 광주 상록전시관에서 초대전으로 열리고 있다. 11월 8일부터 12월 4일까지 열리고 있는 이 전시에서 정운학은 아크릴판을 구기거나 투명수지로 떠내고 혼합재를 이용하여 자루와 옷, 책, 신문지 등과 같은 일상의 오브제들을 변형된 형태와 칼라로 표현하면서 현대 문명사회 속 개인의 존재와 삶의 의미,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세상 또는 외피들과 그 속에 내재된 세상과 존재의 실체들을 통시적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 정운학의 지난 10여년 동안 작품의 궤적을 일별해 볼 수 있는 중간정리같은 자리이다.


    그가 즐겨 다루어 온 주제별 연작들, 이를테면 ‘구겨진 풍경’ ‘기억’ ‘책’ ‘옷’ ‘자루’ ‘토루소’ 등을 테마로 조형양식이나 개념적인 설정에서 여러 유형의 변화를 거듭해 왔음을 보여준다. 평면작업에서 시작하여 ‘회화의 공간성’에 관한 탐구과정에서 ‘입체회화’를 제작하게 되고 이로부터 적극적 의미의 입체조형과 공간에 관한 해석과 설치 연출로 이어져 온 것이다. 비교적 몇년 전의 작업들인  <구석> <계단이 있는 공간> <구겨진 풍경-바다> <저울과 하늘들> <기억의 공간> 등등의 작업들이 그가 말하는 입체회화의 실예들인데, 플라스틱 소재들로 주름과 굴곡이 많은 형태를 빚어내고 그 위에 거친 붓질의 채색을 올려 각각의 표정과 언어들을 담아내는 방식이다.


    그의 작업은 독일 유학파답게 물리적 실체에 대한 개념적 접근과 더불어 그 안에 내재시켜내는 언어들의 무게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책’ 연작의 경우, 책의 외형이 위주가 되어 큼직하고 두터운 몸집이 구겨진 채 몇 개가 조합을 이루어 매달리거나 바닥에 놓여지기도 하고, 사각의 틀 속에 구조적인 구성을 이루는가 하면, 책의 실재라 할 내적인 언어로서 텍스트들이 LED조명이 내장된 투명한 아크릴상자 속에 필름으로 넣어져 유명 무명의 책 이름이나 단어들을 중첩시켜 비춰내기도 한다. 이들 작업들은 크기나 형태는 비슷하면서 각각의 묘사나 색채, 담고 있는 언어들을 각기 달리하면서 벽면 또는 공간에 반복 배열되는 경우들이 많은데, 마치 일정한 유형들을 이루는 세상의 생명 군상들과 그 하나하나 개체의 다름을 나타내는 듯한 ‘반복과 차이’ ‘집단과 개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홍윤리 학예사도 “정운학의 작품 각각은 그가 의도하는 세계를 말하고 있지만 복수의 무심한 덩어리들이 모여진 전체는 서로간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옷’과 ‘자루’는 이름을 달리할 뿐 서로 상관된 개념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색깔과 무늬, 형태들로 구겨지고 펄럭이며 군집을 이루어 매달리거나 한 두 점이 짝을 이루기도 하는데, 이들 허물을 벗어놓은 외피 같은 작업 하나하나는 그 안에 담겨있지만 현상으로는 드러나지 않거나 또는 상실된 개체들의 존재를 담아내는 상징적 조형작업들일 수 있다. 이들 ‘옷’이나 ‘자루’들에서 심하게 굴곡지거나 바람에 너풀거리는 표현들은 각각의 개별존재를 둘러싼 외부 세상이나 세파, 삶의 환경과의 관계를 조형언어로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움직임을 표현한 자루는 그 안에 담겨진 개개인의 인체일 수도 있고 상징적인 무엇이 담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옷이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면 인체를 감싸고 있는 껍질 안에 담겨져 있는 언어이다”라고 말한다.


    최근 정운학의 작업은 내부로부터 비춰지는 빛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책 이야기> <신문> <Flying Shoes> <춤> 연작들이 그런 예들이다. 겉으로 비쳐진 세계 못지않게 내적인 실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답게 이들 빛은 내면으로부터 드러나는 존재의 의미나 가치를 밝혀주는 수단인 셈이다. 물론 이 같은 접근방식은 외부로부터 주어져 존재나 사물을 비추는 절대존재로서 광선이 아닌, 내부로부터 생명의 빛을 내어 존재를 밝히는 동양회화의 빛의 개념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정신과 생각과 지식을 담아내는 책 속의 무수한 단어와 언어들, 세상의 희비애락을 담은 숱한 얘기꺼리와 이미지들을 내장조명으로 비춰내고, 노동의 수고와 땀내가 찌들린 작업신발에서도 빛이 발하고 날개를 달기도 하며, 갖가지 몸의 표정과 색깔들로 생명의 흥과 춤을 담아내는 여성 토루소들까지, 정운학의 작품에서 이제 빛은 물리적 오브제 이상으로 매우 긴요한 표현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심상용은 카달로그 평문에서 정문학의 빛에 대해 ‘존재와 사물을 지지하는 내면으로부터의 빛’이라 말하면서 “그의 작품들은 빛과 사물, 빛과 색을 구분하는 동시에 교차시키는 하나의 새로운 구획을 설정한다는 의미를 띠게 되었다. 게다가 비물질과 물질의 경계와 구분은 영혼과 신체라는 폭발력이 강한 주제와 언제나 마찰을 일으키는 준비가 되어 있는 문제”라면서 “빛에 형상을 제공하고, 형상이 빛의 연장이 되게하는, 비물질과 물질, 빛과 사물 사이를 잇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작용하게 된다. 그 둘이 더 이상 유리된 두 세계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차원임을 밝히는 지평이 되는 것이다”고 평한다.  


    그 동안의 작업들을 묶음지어 되돌아보는 이번 전시는 청년기에서 중견작가로 옮겨가면서 국내외 활동도 더욱 활발해져 가고 있는 정운학의 작업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중간점검이자 자기충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운학은 목포대학교 미술학과, 독일 브라운슈바익 국립미술대학과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1998(도르트문트 게르다튜르케), 2000(독일 도르트문트 게르다튜르케, 프랑크프루트 카아인스갤러리), 2001(프랑크푸르트 아트스펙트룸), 2003(광주 신세계갤러리), 2007(이율배반 Antinomy, 광주 롯데화랑) 등에서 여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백화점에 간 미술가들(2006, 광주 롯데백화점), 중흥동 공공미술프로젝트(2006, 광주 중흥3동), 투영-한국현대미술(2006, 타이페이 국립대만미술관, 관뚜미술관), 광주아트비전(2007, 광주시립미술관), 일상의 가장자리-3인전(2008, 옥과미술관), 제3회 송창문화예술축제(2008, 베이징), 봄날은 간다(2008, 광주시립미술관), 창원아시아미술제(2009, 창원 성산아트홀), 광주15인전(부산 블루홀갤러리), 경계(2009, 광주시립미술관), SALE(2009,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 KIAF2009(서울 COEX), 퀼른21 아트페어(2009, 퀼른), 우보만리(2009, 광주ㆍ서울 신세계갤러리), 제2회 광주국제아트비전(2009, 광주비엔날레관), 2010광주아트페어(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백화점 속의 문화유원지(2011, 광주신세계갤러리), 거시기하시죠(2011, 쿤스트할레광주) 등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2002년 광주신세계 미술상을 수상했고, 2006년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였으며, 현재 함평군 월야면 작업실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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