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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세계로 청춘 노마드 - 양산동창작스튜디오 작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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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2-07-25 21:17 조회8,9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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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희, <Heavenly Nomad>, 2012 



    ▲ 브라이언 헌터, <Wikipedia>, 2012


     

    낯선 세계로 청춘 노마드



    젊은 날은 늘 자신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 열망, 의지, 혼돈, 꿈의 실마리들로 엮어져 간다. 청춘의 활동과 호흡은 실존의 자취로 쌓이면서 그 시절의 표정을 만들고 다음 시대를 열기도 한다. 그 청춘의 일기가 어느 날 문득 열리게 되고, 시절의 자취 속에서 잊고 있던 지난날과 지금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 금남로 옛 동구청 자리에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에서는 7월 29일까지 양산동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아홉 명의 작업들이 소개되고 있다. 대부분 이삼십대 신예작가들로 창작세계의 초입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예술과 삶을 향한 길을 찾고 있다. 강렬한 시각적 형식이나 메시지를 앞세우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실재와 가상 사이에서 자신의 현재를 담아내고 있는 젊은 날의 초상들이다.


    이 가운데 박세희의 <Heavenly Nomad>는 20대 중반에 세상의 여러 낯선 곳에서 느꼈던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사유의 기록 상자다. 반쯤 열린 캐비닛 모양의 하얀 상자에는 어딘가에 실재할 듯한 미지의 공간과 은밀하고 낯선 상상이 겹쳐진 사진과 오브제들로 채워져 있다. 상자 한쪽은 평면의 사진 이미지들이 액자 속에 담겨 걸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들창 모양의 거울, 화장대와 옷장 같은 선반과 서랍들이 실재 가구처럼 정교하게 짜여 있다. 이들 하나하나 이미지와 소품들은 작가의 내면에 쌓여진 삶의 일기를 은밀하게 펼쳐낸 서사적 언어들이자, 동시에 보는 이들의 비슷한 기억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들이다.


    들여다보면 어렴풋이 태극기가 보이는 어떤 공간에 소금유리병과 공기방울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떠다니고, 스코틀랜드 어느 순교자들의 집 묵직한 문 앞에 죽음을 상징하는 검정색 히잡을 두르고 서있는가 하면, 향내 나고 속살이 알차기도 하지만 속살이 문드러져 악취를 내기도 하는 과일들로 사람 사는 세상을 비유하며 그 위에 기도하듯 하얀 차도르를 두르고 서있기도 한다. 또한 관객의 주체적 경험을 유도하는 거울은 눈높이에서 밀창으로 열려 있고, 층층이 열려진 선반과 서랍 속에는 핸드백이나 소금, 가면, 신발 등이 빼꼼히 내비친다.


    우연히 누군가의 사적 공간 또는 비밀스런 일기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상상으로 이야기를 읽어가게 만드는 이 이동식 대화상자는 현존과 초현실의 세계를 이어주는 내적 유목의 통로인 셈이다. 암시와 비유의 이미지들을 통해 초대된 그 공간은, 사실은 인간의지 너머에 존재하는 절대적이고 거룩한 어떤 힘에 이끌려가는 노마드의 세계에 관한 묵상 공간이다.      


    유목민처럼 의식의 유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박세희와 반대로 멀리 북미 캐나다에서 광주를 찾아 온 브라이언 헌터는 낯선 이곳에서 세계로 향한 자신의 길을 탐구 중이다. 작품 의도에 따라 회화와 영상미디어, 설치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그는 2년 여 광주에 머무는 동안 이 새로운 초지에서 예술의 영감과 기운을 흡입하고 다녔다.


    그가 이번에 출품한 작품 <Wikipedia>는 시장패션 같은 꽃무늬 보자기천을 이국의 낯선 공간에 테이프로 부착하고 그 현장을 사진으로 담은 행위의 기록들이다. 북경의 허름한 주택가 넝쿨나무 우거진 시멘트 벽면, 고물상에 버려진 낡은 철제대문, 또는 만리장성 성벽 난간에 알록달록한 보자기천을 붙이고 그 이질적인 이미지의 끼어들기 흔적을 사진으로 담았다. 언뜻 화려해 보이는 꽃무늬들 속에 그곳 세계에 작용하고 있는 거대 권력과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는 비밀스런 메시지들을 적어 넣기도 한다.


    지극히 단순한 이 이방인의 행위는 그가 주요 화두로 삼고 있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접근방식인 셈이다. 또한 불특정한 삶의 공간이나 외부적 힘의 틈입이 제한된 장소에 이방인의 시각이미지를 덧대는 작업이다. 여러 형식과 방법과 소통공간을 모색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아직 특정방향으로 규정짓거나 몰입하기보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재정의하며 확장시켜 나가는 유목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전시장 한쪽에는 ‘북경현대미술탐방圖’라는 제목으로 드로잉과 사진, 비디오 기록영상, 육필원고지, 그 때의 느낌과 발상을 담은 소품들이 펼쳐져 있다. 지난 5월에 아홉 명의 입주작가들이 광주시립미술관의 지원으로 1주일 동안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화의 작은 단편을 훔쳐보고 온”(김명우) 유랑의 흔적들이다. 일상과 예술, 가상의 온라인에서도 낯선 세계를 탐닉하는 젊은 날의 문화유목은 계속되고 있다.



    ▲ 김명우, <Museum>, ▲▶ 이재덕, <인간 관계>(부분)

    ▼ 이진희, <In the Bus>, ▼▶ 이성웅, <Teddy Bear>



    ▲ 2012양산동창작스튜디오 작가들이 꾸민 ‘북경현대미술탐방도’(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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