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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한 비움; 백영수화백의 인생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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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2-12-31 10:28 조회8,9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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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영수, <누드>, 2010. 캔버스에 유채, 89x116cm


    소박한 비움; 백영수 화백의 인생 메시지


    “요즘은 칠하고 바르는 걸 제작한다고 하더라구요. 우리는 ‘그린다’고 했는데… 우리는 공부할 때 작가고 작품이고 하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걸 했을 뿐입니다. 문학과 다르게 직감적인 생각으로 화면을 통해서 얘기하는 거지, 우리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것을 크게 얘기 안했어요. 내 나이가 곧 구십이 되지만 난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원로화백 백영수 화백이 지난 2008년 신사실파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상명대학교 대학원 초청강의에서 후진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매체나 표현방법이 워낙 다양해지고 물리적 실체로 드러내는 작업의 특성을 중시하는 요즘과, 서양화가 유입되던 초기부터 작업해 오던 원로화백의 세대 간의 회화에 대한 개념 차이를 보여주는 말이다. 

    지금 광주시립미술관과 무각사 로터스갤러리에서는 어느덧 졸수(卒壽)를 넘어선 원로화가 백영수 화백의 회화 70년을 돌아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12월 4일부터 2월 24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백화백의 1950년대부터 ‘모자’ ‘가족’ ‘모성’ ‘여백’ ‘창문’ 등 주제별 작품 105점을 선보이고 있다. 간혹 시대의 그늘이 배어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와도 같이 해맑고 군더더기를 털어버린 간일한 형상과 단색조로 생략과 비움이 두드러진 여백의 미를 보여준다.

    이번 백영수 화백의 전시작품들에서는 해방이후 한국 서양화단에서 현대미술의 한 축을 형성해 온 신형상성과 서정성을 결합한 반추상계열의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다. 원래 백화백은 1922년 수원 태생으로 2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성장기를 보냈고, 오사카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뒤 해방이 되자 귀국하여 목포고등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조선대학교 설립 당시 잠시 강단에 서면서 이 지역과 연을 맺었다. 목포여고 재직 당시 학교 강당에서 가진 전시회에 누드화를 출품하였다가 지상논쟁을 일으킬 정도로 서양 신문물에 낯설고 전통 호남남화가 강세이던 이 지역을 떠나 한국전쟁 중 잠시 부산에 머물다 서울로 올라갔고, 1953년 이중섭과 신사실파(1948년 김환기 유영국 등이 결성한 한국식 모더니즘 추구)에 합류하는 등 새로운 조류의 창작세계를 탐구하는데 집중하였다. 1977년 너른 미술세상을 찾아 파리로 건너가 그림을 벗 삼고 지내다 2011년 구순을 맞으면서 35년여의 타국생활을 정리하고 의정부 집으로 돌아와 노년의 화업을 잇고 있다.

    특히, 백화백의 회화들은 1950년대 이후 민족전통 소재들을 단순화하여 신시대의 미감으로 되살려내거나, 기하학적 요소를 가미한 단순형상과 단색조 색면으로 조형적 화면을 모색하던 초기 한국식 모더니즘 회화의 예들을 보여준다. 그런 활동 중에 시대미감을 서로 공유해서인지 그의 지난 날 그림들에서는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의 회화 특성들이 언뜻언뜻 엿보이기도 한다. 이후 '70년대를 풍미했던 단색조 회화 등과 더불어 문학적 서정성과 시심이 담긴 심상화, 최근의 무심하게 비워낸 여백의 공간까지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순수 예술세계를 동경해 온 백화백이지만 이 시기를 관통해 온 세대가 그랬듯이 역사의 굽이굽이 고개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기도 하고, 당대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인들과 동병상련의 교유를 통해 예술의 바탕을 넓히기도 하였다. 이 같은 백화백의 화필여정은 2000년에 펴낸 자전적 회상록 [성냥갑 속의 메시지]에 소상하게 수록되어 있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그의 작가적인 이상은 화려하고 눈부시고 거대하며 놀라운 세상에 대한 감탄이 아니다. 인간적인 사회생활의 기본인 가족과 자연을 벗하는 삶을 이상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널따란 세상에 대한 환상과 꿈을 갖지 않은 순박한 유년의 시각에 머물기를 원하는 것이리라. 시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자연의 본질, 즉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유를 통해 형성되는 심상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의미를 두었다”(2000년 개인전 평문)고 평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1940~50년대부터의 전시 리플릿과 방명록, 1950년에 쓴 [미술개론] 교재와 [성냥갑 속의 메시지] 등 도서, 미술지, 화구, 색바랜 사진들이 함께 나들이를 나와 문화의 시공간을 넘나들게 한다. 대학 졸업 전부터 아득한 예술세계에 긴장과 조바심을 갖게 되고, 20대부터 시장의 상품성을 가늠질 당하는 요즘의 후진들,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백영수 화백의 회고전은 잠시 긴 호흡으로 유도해주는 나들이가 될 것이다. 



    ▲ 백영수, <공간의 문>, 2012. 캔버스에 유채, 130x162cm



    ▲ 백영수, <모성의 나무>, 1998, 캔버스에 유화. 각 130x1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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