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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만 개인전-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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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3-04-13 11:50 조회9,2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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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만. <노랑머리>. 2013.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 박수만. <택배>. 2013. 캔버스에 유채. 146X112cm


    ▲ 박수만. <혹_아무꿈>. 2013. 캔버스에 유채. 117X91cm


    ▲ 박수만. <소통>. 2013. 캔버스에 유채. 227X182cm
     

    육신에 어른거리는 실존의 편린들

    박수만 개인전 - ‘쇼’


    문화적 치장이나 사회적 외피를 벗어버린 속 것 그대로의 인간육신을 통해 삶의 실존을 담아내는 박수만의 열한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억지로 보여주기 위해 꾸며진 ‘쇼’가 아닌 이미 그 자체로서 치열한 삶이면서 일상으로 이어지는 인간생존의 무대 모습을 화폭에 올려놓은 최근작들이 4월 12일부터 25일까지 광주 롯데갤러리에서 발표되고 있다. 롯데갤러리가 기획한 창작지원공모 중견작가부문에 선정된 초대전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그늘진 광대뼈와 늘어진 몸뚱이, 핏기 빠진 창백한 살색 인물상들이 도회지 그늘 속에서 하루하루를 부대끼고 고뇌하고 꿈꾸며 엮어가는 삶의 편린 같은 이야기들이 독특한 변형화법과 함축된 이미지로 연출되어 있다. 월산동 닭전머리 홍등가 나이든 노랑머리 여인의 생기 빠진 하루살이 쇼이든, 잠시의 불끈한 욕망조차 일지 않는 지친 육신들로 빈껍데기 자극을 기웃거리는 남정네들이든, 먹거리ㆍ입을거리ㆍ즐길거리ㆍ문화적인 치장거리들을 초점 없이 욕망하는 이 시대 범부들이든, 거품처럼 일어났다 사그라지는 허망한 소망들이 어른거리는 이러저런 사람들이든.. 박수만의 작업에서는 동시대 삶의 초상들로 비춰내어진다.

    이번 전시에 맞춰 박수만의 아트북이 출간(Hexagon, 한국현대미술선 15)되었는데, 80년대 거친 붓질과 강렬한 원색계열의 표현성 강한 초기작부터 형식과 발언이 걸러져가는 그동안의 작업들, 전시를 앞두고 계속해서 그려낸 최근 작들까지 큰 흐름과 주요 작품들, 그에 관한 평자들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박수만의 창작지원전을 공모한 고영재 큐레이터는 그의 작품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람다움의 본능’을 읽어내면서 ‘문명인으로서 보여지는 고독한 삶과 본연의 인간성 사이의 간극이 쇼로 풀어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시 팸플릿에 실린 고영재 큐레이터의 글을 통해 박수만 그림의 속 얘기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다.


    사람다움의 결핍, 그 감춰진 속내에 관한 이야기  

    예술(藝術)이 창작자의 개성과 그 본연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창조 활동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확장하자면, 구체성과 직관력을 기반으로 드러나는 창작의 이면에는 개성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힘이 응축되어 있다.

    인간의 ‘잃어버린 순수성’, 즉 문명의 심부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수만의 회화는 필시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밑바탕에 둔다. 빼곡히 쌓여 있던 인체 드로잉으로 기억되는 작가에 대한 첫 단상, 그것은 그리는 행위의 원초적 생명력이기에 앞서, 경험으로써 풀어내는 신체이자 작가 스스로 사람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여리디 여린 선홍빛 살결로 귀결되는 박수만의 인간들은 본연의 생의 이상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모습이다. 무기력하거나 때로는 처연한 기운을 내뿜는 각각의 인물은 타자, 혹은 암묵적으로 강요된 질서에 의해 삶의 방향타를 잃어버린 듯 하다. 더불어 작가 스스로의 생활반경에서 바라본 경험치의 사람살이가 화폭 안에 생생히 녹아들어 있기에, 인물을 단순히 소재적인 코드로 해석하기에도 석연치 않다. 물질화된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고독감, 무미건조해진 삶의 원형을 농익은 풍자와 해학으로 형상화 해온 작가는, 금번 전시에서 문명인으로서 '보여지는 삶'과 본연의 인간성 사이의 간극을 ‘쇼’라는 타이틀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신체, 즉 몸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삶의 파편들은 여지없이 작가의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작가의 작업실이 위치한 ‘광주 월산동’ 풍경에 주목하게 되는데, 주술의 기운이 형형한 점집과 일상의 고민으로 영글어진 허름한 술집, 혹은 성(性)을 사고파는 구역들로 점철된 이 흥미로운 동네풍경은 도심 한 복판에 펼쳐져 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에서 나름의 영리와 생존을 위해 분주한 현대인의 일상 한 가운데, 아날로그의 감성이 현존하는 것이다. 근작인 <노랑머리> 시리즈에 여실히 드러난 풍경은 이율배반적일 수 있는 현재의 자화상들이 작가의 고유한 표현 언어로 함축되어 있다. 어수룩한 얼굴에 저마다의 남루한 오브제가 자리한 <혹, 아무 꿈> 연작에서는 이러한 생의 괴리감에서 비롯된 다양한 감성들이 보는 이의 눈을 자극한다. 술병, 잔, 팔레트, 물주전자, 돼지저금통, 청바지, 혹은 일상을 에워싸는 세간살이들은 인간사의 현전(現前)임을 강조하듯, 생의 족적이 선명한 움푹 패인 볼 사이를 비집고 들어찬다. 달리 보면 신체, 즉 사람을 모티브로 풀어내는 작자의 내러티브는 의미 그대로 ‘실존’을 향한 문제제기일 수 있다. 합리주의를 명분으로 가시화된 현대의 메마른 정서, 작가는 스스로 제기하는 잃어버린 순수성에 관해 “참 인간세상, 즉 좋은 세상이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삶의 진실이나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다”라고 술회한다. 희로애락을 비롯한 인간의 마음자리에 위치한 ‘사람다움’의 본능, 자못 폭력적인 질서에 의해 잠식 당한 이러한 인간의 순수가 보편성의 진리로 치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하자면, 작가의 표현어법 또한 작업의 쟁점과 동일한 어조를 유지한다. 이는 박수만의 작풍이 내용과 형식 면에서 그 완성도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는데, 유한(有限)의 생에서 추구하게 되는 인간의 본성, 혹은 염원이 싱그러운 과일 따위의 상징적인 코드로 등장하는가 하면, 작품 <택배>에서 볼 수 있는 즉물적인 도상은 주저 없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사람살이의 현재에 대한 자각이자 반추일 수 있는 박수만의 작업은 ‘본성, 인간성, 인간다움, 사람다움’이라는 화두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나아가 그리는 행위의 근원적 생명력을 통한 자기성찰이다. 이러한 성찰은 예술가의 역할범주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작가는 “순수성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에 예술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키워드는 예술적 행위가 보는 이로 하여금 본질적인 교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품 <소통>에서 나타나듯,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인간사의 형국마냥, 작가가 추구하는 궁극의 이상은 더불어 자각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저마다의 내면에 품고 있는 아려한 ‘노스탤지어’. 박수만 작가가 그려내는 순수예찬으로 하여금 우리의 잃어버린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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