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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혼을 통한 치유와 거듭나기 - 김광례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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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3-11-09 13:07 조회10,2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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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원혼들의 진혼을 통한 치유와 거듭나기


    육탈된 인골들을 싣고 떠나는 장엄한 레퀴엠
    뼈에 사무친 집단적 트라우마의 씻김과 치유

    2013. 11. 7 - 11.13, 예술의 거리 DS갤러리 


      죽음!?… 참으로 아득한 말이다. 이 생의 생명활동을 마감하고 아무 것도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간 것이다. 결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영원한 작별이기 때문에, 비애와 비통함은 무엇으로도 비할 수가 없다. 더구나, 한 순간에 전혀 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혈육의 생명줄이 끊긴 것이라면 홀연 진공의 나락에서 손을 놓쳐버린 심적 공황상태와 애간장을 녹여드는 아린 고통은 견디기 어려운 극약이 되고 만다.

      김광례의 작업은 섬찟하면서 레퀴엠(requiem)처럼 장중하다. 겹겹으로 쌓인 주검의 무더기와, 하나하나 생생하게 묘사된 해골과 뼈다귀들,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된 벽면 가득한 망자들의 사진, 그 싸늘한 주검들이 이별했을 세상의 수많은 인연들이 혼령과 더불어 주변을 떠돌고 있는 듯하다. 끔찍한 현장을 환기시키는 생생한 설치물의 시각적 충격과, 보이지 않는 기운이 만들어내는 낯선 두려움이 심적 전율로 몸서리치게 한다. 그 설치된 이미지들은 순간 떠오르는 어떤 정치적 사건들과 결부되면서 세월의 깊이로 침잠되어 있던 분노와 안타까움들을 또다시 소용돌이쳐 오르게 한다.    

      김광례의 작업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저질러진 참혹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비슷한 사건을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훨씬 강렬하게 지난 기억들을 되살려낸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그런 정치적 사건에 대한 고발도, 비판도, 사건의 되새김도 아니다. 거부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저항도 아니다. 순식간에 휩쓸려간 재해였든, 사고에 의한 것이었든, 억울한 집단적 희생이었든지 간에 이러저런 사연들을 가진 숱한 혼백들에 대한 씻김과 영생 평안을 기원하는 제의이다. 

      김광례는 너무 이른 나이 때부터 여러 차례 혈육과의 사별을 겪었다. 한 순간의 자연재해와, 돌발적 사고와, 육신의 병으로 곁을 떠난 가족들과의 가슴 저미는 이별은 평생의 깊은 상처와 멍울을 만들어 놓았다. 그 처절한 고통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지독한 성장기가 삶을 더 단단하게 다져주긴 했지만 근본적 상처는 내면에 앙금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세상살이 중에 다른 죽음을 접할 때마다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트라우마(trauma)의 파장으로 또 다시 혼탁해지는 공황상태에 몸서리치곤 했다. 더구나 세상의 이해할 수 없는 죽음들, 집단 살육, 부도덕한 피살사건들은 더 크게 마음을 흔들어 놓곤 했다.  

      김광례의 작업은 거대한 정치적 희생을 주된 소재로 위령의 장을 꾸미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작품에 차용한 이미지 그대로 캄보디아 킬링필드(Killing Field)를 특정하여 재현하거나 비판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자행된 충격적인 학살과 비인도적 죽음들에 관한 상징적 이미지인 것이고, 이를 통해 인간세상의 자의적 이데올로기와 이기적 욕망이 만들어낸 엄청난 희생들을 애도하고 원혼을 달래는 진혼제인 셈이다. 외부적인 상황으로 가해진 죽음, 본래 자기육신에 부여된 생명시계가 다하기도 전에 돌연 세상을 떠나야 했던 숱한 혼령들에 대한 위령제라 할 수 있다.

      <그대 이제 잘 가라>는 낡은 목선에 육탈된 해골과 정강뼈, 갈비뼈, 대퇴뼈 등등이 수북이 실려 있다. 물론, 처참한 실체를 확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공력을 들여 제작한 FRP 대용품들로 극한의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배의 앞뒤로는 누런 염습천이 만장처럼 늘어져 망망한 허공에 배를 띄우고, 해골처럼 삭아버린 배의 가장자리에는 하얀 광목천을 꼬아 둘렀다. 수십ㆍ수백만의 혼백을 실은 이 목선은 이제 작가 내면의 상처까지 함께 싣고 이승과 저승을 가로지르는 어둠의 강을 건너 영겁세계로 장엄한 항해를 시작한다. 그리고 애도객들은 그들 해원을 바라는 오색 띠를 매어주며 생사를 초탈한 영면을 축원하게 된다. 

      <기억하고 기억하라>는 캄보디아 킬링필드 희생자 700여명의 사진이 벽면 가득 줄지어 붙여지고, 사람뼈 모양들로 압축시켜 만들어진 길다란 총들이 허공에 흔들거리며 그들을 겨누고 있다. 나어린 소녀와 순진무구한 학생들, 그저 평범한 생활인이었을 청년이나 촌부 등등의 죽음의 그림자조차 느끼지 못하는 표정들은 섬찟한 총부리와 극적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그들에게 총 끝을 겨누었던 처형자들도 이념의 확신도 없이 진저리처지는 살육의 현장에 투입된 학살 도구들이었다면, 그들 또한 권력의 희생자들이고, 그런 개개 존재들의 뼈골들로 이루어진 총들이 긴장된 순간에 의지 없이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는 것이다.

      <기억하고 기억하라 Ⅱ>는 킬링필드 뚜얼 슬랭(Toul Sleng) 희생자들을 소재로 한 영상작품이다. 스크린 가득 채워져 있던 희생자 얼굴들이 어느 순간 하나 둘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동심원 표적들이 무표정하게 떠오른다. 총을 겨눈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가족과 이웃들이 이유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이데올로기의 올가미에 씌워져 적이 된 무리들은 흔적조차 없이 모두 제거되고, 언제든 다시 총알이 박히게 될 표적들만이 그들 세상을 가득 메운다.

      김광례의 작업은 세상의 무고한 희생에 대한 해원의 장이면서, 작가 스스로도 개인사적 상처의 극복과 치유의 살풀이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작업방향의 변화를 시도하려 한다. 그동안 자신을 옥죄어 온 죽음의 끄나풀들을 풀어내고 세상의 삶에 관한 작가적 발언을 함축시켜내는 작업에 열중하려 한다. 세상의 큰 희생과 고통을 야기시키는 비뚤어진 권력욕과 이데올로기, 탐욕과 겉치레 가식, 허세 같은 인간 세상사의 이면들에 주로 초점을 맞추려 한다. 화려하지만 뼈다귀들로 이루어진 왕관과 샹들리에, 고급음식이나 명품, 앉을 수 없는 높이의 권좌 같은 상징적 형상들이 그런 예이다.

      아무쪼록, 김광례의 희망대로 오랫동안 가슴을 짓눌러온 세상 떠난 가족에 대한 사별의 아픔과 세상의 죽음에 대한 혼란스런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망자들의 영면을 축원하고, 그 공허와 혼돈을 털어낸 자리에 자신의 삶을 굳건하게 채워가는 거듭나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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