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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작가들의 '북경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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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02-19 08:57 조회10,0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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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연 <도시산수3>, 2012. 291x197cm. 캔버스에 먹, 아크릴릭
                                                                          윤일권 <기억1>, 2012, 154x150cm.장지에 탄필. 혼합재료
                                                                       ▼ 정광희 <무제>, 2011, 162x130cm, 한지에 수묵
                                                                          윤남웅 <새파는 남자>, 2013, 175x121.5cm, 합판에 각


    광주작가들의 ‘북경질주’


    해외 잇는 광주미술 교두보
    독자적 작품세계로 외부타진
    창작역량으로 문화동력 확장  


    북경창작센터에 1년씩 머물다 온 광주작가들의 작품전이 상록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북경질주’라 이름 붙인 이 전시는 북경창작센터에 2012년과 2013년 각 1년씩 머물다 온 작가 9명의 성과보고전 형식의 전시회다.

    북경창작센터는 세계 현대미술에서 주요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북경의 환티에 예술구에 광주작가들이 안정되게 머물며 창작과 현지 교류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시립미술관이 2009년 말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작업공간으로 우리나라 미술관 가운데 맨 처음 문을 열었다. 매년 4명씩, 올해 5기까지 총 26명이 이 시설을 이용했거나 현재 이용하고 있다. 입주작가에게는 왕복항공료와 창작활동비, 작업공간과 숙소 등을 지원하고, 오픈스튜디오 외에 북경에서 별도의 발표전을 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번 전시는 2012년 제4기 작가인 김상연ㆍ신호윤ㆍ윤일권ㆍ장현우, 2013년 제5기인 윤남웅, 이수산, 장진원, 정광희 작가 등 8명의 작품들로 꾸며졌다. 김상연은 높이 3m에 달하는 거대한 <도시산수> 3점을 보여준다. 추운 겨울 작은 나무 화분에 씌워놓은 볼품없는 검정 비닐봉지들에서 북경의 겨울을 읽어내고, 그 주름들을 자잘한 붓자욱들로 골짜기처럼 묘사해낸 진한 먹작업들이다. 특히, 봉지 바깥 여백과는 흑백대비를 크게 두어 겨울 추위를 더욱 차갑게 하고, 아래로는 질긴 생명의 잔뿌리들이 땅을 향해 허공을 더듬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세월의 흔적들은 쌓이는 것이 아니라 산처럼 높고 가파른 것에서부터 서서히 부서져 완만한 곡선으로 평평해진다”는 김상연은 광활하지만 거친 북경이라는 거대도시에서 소소한 생명의 겨울나기들을 담아내었다.

    중앙미술학원 수업기 이후로도 자주 북경을 오가며 활동해 온 윤일권은 의인화된 침팬지 수묵초상들을 통해 현대인의 심리와 삶을 풍자한다. “침팬지를 통해 인간 본능과 사회현상을 보여주면서도” 결국 그것은 늘 자신을 향한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장지에 탄필이나 연필로 그려진 <응시> <유희> 연작들은 하나같이 털복숭이 주름투성이인 유인원의 여러 얼굴 표정들을 화폭 가득 채워 넣거나, 사람과 똑같은 포즈로 세상을 유희하는 침팬지 모습을 빌어 동물적인 순수와 욕망을 인간세상에 대입시켜 비춰 보여주고 있다.

    “살다보니 홍어가 말 그대로 (뭣)이 되어버린 세상”이라는 윤남웅은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독특한 세태풍자 풍속화나 마음을 비운 심상화 대작들을 내걸었다. 넓은 목판을 거친 선들로 깎아내어 투박한 인물과 도상들을 새기고 부분적으로 채색을 가미한 <새 파는 남자>, 골판지 결을 훨씬 정갈하게 살리고 지점토와 아크릴릭을 이용해 차분하게 넓은 색면들로 채색하거나 아예 잿빛 합판에 한 가닥 선각만을 새겨 홀로 노니는 <유유(遊流)>를 묘사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꽃과 나비들을 화면 가득 새겨 넣은 <꽃>의 경우는  민속공예품 같은 알록달록한 꾸밈으로 투박한 토박이 정서를 우려내기도 한다.

    무한반복 바닥결 메우기 작업과 서예를 접목하는 정광희는 무엇이든 스스로 찾아야만 하는 1년의 체류기간동안 “두통처럼 시간을 앓으면서 찾았던 것은 다 보물이었다”고 말한다. 전반적으로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작업개념 위에 시각적인 화면효과와 모필 특유의 붓맛을 올리며 독자적인 화폭을 찾고 있다. 묵은 고서를 고른 간격으로 켜켜이 접어 붙여 만든 요철바닥에 넓은 획으로 먹빛을 훑거나, 사람 ‘人‘ 개별존재를 세상이라는 화폭 위에 점점이 앉혀보기도 하고, 한 ’一’자들이 모여 518개를 이루는 ‘신군상도’ 일부를 선보여 준다.

    광주 현대미술이 외부로 문을 연 획기적 전환기는 90년대 중반이다. 현대미술의 무한세계를 제대로 접하고 싶었던 신예들은 주로 뉴욕으로, 수묵의 본질과 현실주의 미술을 깊이 있게 공부하려는 청년작가들은 중국(심양 노신미술학원이나 북경 중앙미술학원 등)으로 유학들을 다녀왔다. 그밖에도 프랑스ㆍ이탈리아 등지의 여러 현대미술 현장과 대학들을 찾아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높이고 돌아 왔다. 이들이 바깥세상에서 보고 겪고 다지고 온 경험들이 토대가 되고 광주비엔날레의 주기적인 접촉이 촉매제가 되어 지금 국제적 활동력을 가진 광주미술이 성장할 수 있었다.  

    광주시립미술관이 나라 밖에 창작스튜디오를 연 것은 획기적이었다. 재정이 열악한 지방미술관이 여느 국공립미술관보다 앞서 중국 한복판에 지역작가들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매년 입주작가들이 1년간 현지에서 맘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조건 없는 지원을 이어오고 있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이다. 문화는 시대의 바람으로 들고 나며 새 기운을 불어넣고 꽃과 과실들을 키워 간다. 창작하는 작가들이 보다 넓은 통찰 속에서 자신과 세상을 다시 보면서 실질적인 경험과 활동역량을 높여가는 것은 결국 문화도시 광주의 내부 동력을 키워가는 일임에 틀림없다.

    - '조인호의 미술이야기' (전남일보 2014. 2. 19)




    ▲ 신호윤 <Migrated Flowers>, 2014, 종이


    ◀ 장현우 <신인류-자매>, 2011, 94.5x122cm, 알루미늄에 산업용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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