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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에 되돌아본 '광장의 기억'- 김병택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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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05-31 16:25 조회7,7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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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에 되돌아 본 ‘광장의 기억’- 김병택展


    오월이 저문다. 때 이른 삼복더위가 광주의 오월을 달구는 가운데 공식, 비공식적 기념행사와 전시들이 막을 내린다. 선거난장까지 덮어버린 침몰시국으로 어느 때보다 비감하고 심란했던 올해 오월은 그렇게 또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겨진다.

    오월의 여러 전시 가운데 김병택의 ‘광장의 기억’ 전시가 있었다. 5월 7일부터 31일까지 갤러리 생각상자 초대전으로 마련된 이 전시는 5ㆍ18민주광장이라 이름된 옛 전남도청 앞 광장의 의미를 역사의 여러 시점에서 되새겨낸 기록 모음이었다. 전시작품들도 김병택의 오월 관련 여러 작품들 가운데 ‘광장’을 주제로 골라 기획한 것이었다. 2003년부터 최근작까지 20여점으로 구성된 이 전시에서 김병택은 5ㆍ18 이후 다른 시간대마다 그 곳의 존재와 의미를 사실적 기록의 회화연작으로 보여주었다.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심장으로 각기 다른 시점마다 당대의 정치적 이해나 시국에 따라 이용 당하기도 하고, 여전히 시민집회나 시국모임에 품을 열어주면서 30여년 세월을 지나온 옛 도청앞 광장의 시대별 현재를 장소와 건물, 나무 같은 그곳 주체들을 통해 기록해 온 현장초상이다. 역사적 기념공간으로 박제되고 쇠락해버린 도청건물과 분수대, 그 때나 지금에나 변함없이 현장을 지켜 온 몇 그루 나무들이 주인공이다. 현장의 활기가 사라진 건물들은 빛바랜 추념의 공간으로 회상조 분위기나 저무는 일몰의 붉은 기운에 휩싸이기도 하고, 더러는 또 다시 새봄 새 오월을 맞아 사라지지 않는 현장의 진실을 푸른 이파리들로 환기시켜내기도 한다.

    한달여간 진행된 김병택 전시를 마치는 시점에서 그의 작업을 전시 카탈로그에 실린 임선진의 평문 일부를 통해 되새겨본다.        

     

    역사와 현재의 존재로서 ‘광장의 기억’ - 김병택

    임 선 진 (인류학적 문화비평)


    … 기억은 때론 현재를 실천시키기도 하며, 현재의 모습을 지속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억에 대한 화가들의 시선은 휘발되거나 삭제되었던 기억, 혹은 감추어지고 억압된 기억 속에서 자신의 지향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지점에서 환기(喚起)되었다. 김병택의 이번 전시 <광장의 기억>展 또한 옛 전남도청 광장을 중심으로 한 주변 풍경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와 흔적, 그리고 그 기억의 현재적 존재로서 의미를 환기시켜 보여주고자 한다.

    옛 전남도청 광장의 풍경

    …옛 도청 광장의 풍경은 김병택의 기억에 아주 중요한 증언 역할을 한다… 5․18 이후 34년을 지탱해왔던 유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일상에서 출발한 현실주의 작업방향을 지향해 온 그에게 도청 광장은 자신의 작가적 실체를 입증하는 과정이자 대상(objet)이기 때문이다.

    <광장의 기억-신목神木> <광장 이후-분수대> <그날의 기억-도청> <신목神木> <별이 된 사람 1, 2> <창틀-신목> <봄․여름․가을․겨울의 도청과 신목> 등 모두 옛 도청 건물, 광장 주변의 은행나무와 향나무를 통해 도청 광장에 얽힌 기억과 흔적을 환기시키며 그 기억 속 이야기들의 역사성과 현재, 미래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기억하는 탐사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도청 광장을 소재로 하지만, 나무가 주제다. 누가 기억하는가? 바로 광장에 굳건히 버티고 있는 생명체 신목(神木)이다. 그 나무는 역사적인 나무로서 건물 조망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다. 2007년 이후 여러 단체전에서 만났던 작가의 <신목神木>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나가는 은행나무와 불꽃처럼 타오르는 향나무가 지난 역사와 이후 광주와 사람들을 지켜주는 버팀목으로서의 신목처럼 변함없이 건재하고 우뚝 솟기를 희망하고 있는 듯하였다. 이번 <광장의 기억>展에서 다시 만난 새순의 신록과 더욱 풍성해진 청록, 황금빛 나무도 지난 시간을 잘 버텨왔던 것일 터다. 하지만 몇몇 <神木신목>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하고, 성장하지도 못한 채 그 자리 그대로만 서 있는 듯하다. 이 신목은 곧 부끄러운 오늘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며 시선일 것이다.

    회색빛으로 휑하게 서있는 도청 건물과 분수대 앞의 주검이 된 솔부엉이 한 마리, 별이 된 바보대통령의 모습은 민주주의사회에 역행하는 암울한 현재를 말하는 듯하다… 특히 표면을 붉은 색으로 덮은 광장에서 작가의 시선은 더욱 더 극명하게 부각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수많은 희생을 핏빛 기억으로 소환시켜, 왜곡되고 잊혀지는 과거 역사의 가치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런 핏빛 광장에 서있는 나무이기에 작가는 우리가 마주서고 있는 현재-가족, 사회, 인간, 생명, 환경 등에 얽힌 참상-를 문제시함으로써 그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진실이 불편하기 마련이듯, 붉은 빛은 색채가 불편하다. 그래서 이 붉은 색은 피로 얼룩진 민주주의 역사와 그로 인한 아픔과 충격, 기억, 시대적 가치 등을 보다 강렬하게 일깨워주는 표현법이 될 것이다.  


    작가적 부채의식으로 환기(喚起)되는 ‘광장의 기억’

    … 그가 십년 가까이 도청 광장의 풍경을 집요하게 잡고 있는 이유는 바로 청년시절의 작가적 부채의식 때문이다. 사실주의와 현실주의 미학을 접하기 시작한 대학시절, 소재주의와 획일화된 미의식-예컨대 ‘red=빨갱이’라며 빨간색을 쓰지 못하게 하는 사회의 폐쇄성과 같은-에 박혀버린 당시의 불합리하고 가혹한 분위기에 대해 “나는 왜 그때 항변하지 못했을까?”라는 자괴감에서부터 시작한 그의 고민은 이를 작품으로 채 실험하고 실천해보기도 전에 유보되었다. 부모님의 잇단 죽음으로 형제들의 현실적인 가장(家長)이 되어 우선 먹고 살아야 했던 지난 시간과 무관치 않다.

    … “뭔가를 얘기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잊어버려서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말하는 그에게 옛 도청 광장은 상실의 대상이면서 또한 부채의식 극복의 대상이 된다… 자신이 서 있는 좌표를 확인하고 작가적 정체성을 구현하는 작업을 틈틈이 수행해왔다. 이처럼 이번 <광장의 기억>展은 작가가 그간에 가졌던 상실감과 부채의식을 드러내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다…


    광장의 기억을 통한 작가의  ‘문화적 정체성’ 만들기

    결국 옛 도청 광장의 기억은 그의 작가적 정체성의 매개가 된 것이다. 결실은 개인과 사회, 국가, 세계에 있어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기억을 발굴하고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이는 그의 기억하기가 자신은 물론 보는 관람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와 연관된다. 기억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부채의식을 안고 가는 사람들과 서로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장의 기억>展은 절대화할 수 없는 기억과 흔적으로서만 환기되는 회화의 기능을 고스란히 노출시킨다. 그러나 그러한 미완결성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을 담고 있다. 신목을 통한 사계절 풍경, 붉은 색, 기억의 조각들이 작가의 경험과 이미지로 새롭게 주입되고 해석됨으로써 변화되어 간다… 작품에서 기억 행위가 중요한 것은 작가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불가능을 알기에 오히려 기억을 재현하며 실천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기억, 그 기억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공동체=광주정신’의 역사가 중요한 것은 ‘광장의 기억’을 통해 대면할 수 있는 과거가 개개인의 현재의 존재로서, 미래를 형성하고 아울러 사회와 인류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을 일구고 있어서다. 김병택의 작업에서 멈추지 않는 그의 의지를 볼 수 있고 그의 이후 ‘기억하기’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까닭이다.



    ▲ 김병택 <광장의 기억>, 2011, 162.2x97.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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