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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방에 담겨진 존재의 무게- 양문기 조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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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대숲바람 작성일07-03-20 18:40 조회9,8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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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창작지원전-양문기 조각전. 2007.3.15-3.28, 광주 롯데화랑
     

    가방에 담겨진 존재의 무게


    전시실이 마치 유명 브랜드의 가방매장 같다. 레드카페에 줄지어선 크고 작은 가방들, 벽면 선반 또는 명품로고가 새겨진 투명상자 속에 진열되거나 전시실 한쪽에 무리지어 놓이기도 하고, 위태롭게 비뚤거리며 바벨탑처럼 쌓아올려져 있다. 거친 피부를 그대로 드러낸 채 손잡이만 끼워진 묵직한 바윗덩이부터 매끄럽게 속살이 잘 다듬어진 작은 돌덩이까지 모두가 명품 브랜드 마크가 새겨진 가방모양의 돌조각들이다. 지난 99년에 광주 북구청 앞 야외에서 가졌던 인간 ‘욕망과 에너지’에 관한 첫 조각 발표전 이후 아주 오랜만에 두 번째로 개인전을 갖게 된 양문기의 조각 전시장 풍경이다.

    7톤 9톤에 이르는 거대한 돌덩이들을 뚫고나오는 이글거리는 화염 같은 뿔들, 또는 욕망의 촉수를 뻗어 허공을 더듬는 강렬한 에너지, 그런 욕구의 발산이거나 소망과 동경의 알을 잉태하는 생멸의 늪으로서 자궁, 동체이탈처럼 또 다른 존재로 분리되는 사각돌... 그 첫 전시에서 들끓어 오르던 ‘욕망’의 분출들이 최근 몇 년 동안의 작업에서는 가방과 상표라는 집약된 사회적 표상들로 다듬어지고, 특히 주제의식을 집약하는 외국 명품 심볼과 로고들을 차용하면서 사회적 풍자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실 가방은 일상적인 생활소품이지만 의복이나 치장과도 같이 사람을 겉싸는 사회적인 외피가 되기도 한다. 뒤틀린 욕망의 잘못된 분출이 스스로도 감당 못할 거대한 무게로 증식되던 첫 전시 주제의 연장선에서 양문기의 근래 가방작업들은 몇 가지 분화된 의미를 담아내는 매개물이 되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가방은 하루를 열고 닫는 일과이기도 하고, 한 개인의 활동과 직업과 수준을 내비치는 단초인가 하면, 호사취미와 자기과시를 채워주는 악센트, 사적 욕망과 사연을 간직한 은밀한 보따리, 떠나고 돌아오고 여행․이별․이사․이직… 등등 거의 일상의 삶과 함께 하는 셈이다. 사실 작가 자신에게도 인생사에서 큰 짐을 꾸리게 된 어느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착잡함과 혼란 속에서 문득 그 가방이 현실의 무게로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던 것처럼 가방은 또 다른 출발이거나 일탈이거나 삶과 욕망과 존재의 무게를 담는 짐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일탈을 꿈꾸면서도 스스로 짊어진 무게에 짓눌려 움직이기조차 힘에 겨운 현대인, 그리고 가방끈 길이와 브랜드로 암암리에 조장되는 사회적 서열과 권력의 문제까지 양문기에게 가방은 여러 복합적인 의미들로 다루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양문기의 가방을 소재로 한 이번 돌조각 작품들은 다듬어지는 방식에서 색다른 점을 보여준다. 로고와 심볼로 상징되는 명품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무게감 못지않게 존재의 본래 고유가치를 주목하는 작가의 관심사가 돌을 다룬 흔적들에서 쉽게 읽혀지는 것이다. 즉, 각각의 가방들로 사용되어진 돌들의 태생적 배경과 고향, 그 돌의 내력과 역사, 특성을 인위적인 조형작업으로 완전히 탈바꿈시키고 가려버리기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흔적을 남겨놓는 것이다. 그가 주로 사용한 오석의 경우에 거친 황토가 묻어있는 듯한 겉돌 상태부터 필요한 부분을 떼어내고 다듬고 갈아내는 정도에 따라 투박한 황갈색과 회백색, 윤기 도는 검은색까지 마치 먹색이 번져 나오는 듯한 여러 단계의 색깔들을 보여준다. 작품의 시각적 효과를 달리하는 이 같은 돌 다듬기는 현대인들의 자기과시를 위한 인위적인 꾸밈이나 외부적 기준에 좌우되는 판단들 못지않게 사회 환경과 물결에 휩쓸리고 부딪치는 가운데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개별존재들의 근본과 현재에 대한 관심의 재환기인 셈이다.

    첫 번째 야외전시 때와 달리 이번 발표전은 주제와 소재가 그렇듯 백화점 갤러리라는 전시공간 특성과 연결되면서 더 쉽고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것 같다. 전시실 중앙을 가로질러 레드카펫을 깔고, 쇼케이스나 라이트박스로 선반과 탑모양을 만들거나 브랜드와 돌가방을 교차시켜 쌓아올리는 설치방식들은 이번 전시의 주제표출을 위한 전체 한 덩이의 공간연출 개념으로 접근한 듯 하다. 각 돌들이 주는 색감과 재질감, 후줄근한 짐가방과 여행가방부터 귀티 나는 소품 핸드백까지, 조형적인 시각이미지와 함께 삶 속에서 쉽게 접하는 지극히 일상적이고도 사회적인 주제의식을 독자적인 형식과 얘기꺼리로 풀어내가고 있다. 현실 속에서 공감하는 일반적 사회적 현상을 작품의 개념과 형식간의 균형을 맞추면서 독자적 작품세계를 다듬어가려는 그의 예술의지에 이번 전시가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 조인호(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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