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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미술의 위기: 예산이 아니라 방향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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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요안 작성일25-11-25 13:54 조회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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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미술의 위기: 예산이 아니라 방향이 문제다

     

    건강한 생태계를 위한 지원의 철학과 방향에 대한 제언

    광주 미술계의 문제를 논할 때, 우리는 늘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타 지역에 비해 열악한 경제, 협소한 미술 시장, 그리고 행정의 인식 부족. 그래서 해결책은 언제나 전폭적인 지원과 예산 확대로 귀결된다. 마치 선진국 수준의 예산만 투입하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처럼 말이다그러나 과연 그것이 문제의 전부일까? 물론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삭감은 모두에게 악재이긴 하다. 하지만 예산의 증감에 따라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는 이 구조 자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닐까? 지난 수십 년간 지원의 규모는 계속 성장해왔지만, 왜 광주 미술계는 여전히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채 외부의 충격에 이토록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가.

    1. 첫 번째 단추: 미술 생태계에 대한 근본적인 오진

    모든 실패는 잘못된 진단에서 시작된다. 현재 광주 미술 지원 정책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성격과 역할이 전혀 다른 미술계의 여러 집단을 미술인이라는 하나의 단일체로 취급하는 데 있다. 스포츠계에 국가대표(엘리트 체육), 프로 선수(상업 리그), 조기축구회(생활 체육)가 엄연히 다른 역할과 목표를 갖듯, 미술계 또한 명백히 구분되는 3개의 층위로 구성된다.

    첫째, ‘뮤지엄 작가로 대표되는 비상업·실험 미술 그룹이다. 이들은 동시대 미술의 담론을 생산하고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운동선수로 치면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다. 이들의 작업은 상업적 가치로 환산되기 어려워 시장에서 자생하기 힘들며, 바로 이 지점 때문에 공공 지원의 가장 핵심적인 대상이 되어야 한다.

    둘째, 아트페어와 갤러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상업 작가그룹이다. 이들은 작품 판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이들은 프로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적인 현금 지원이 아니라, 그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장 환경과 제도적 인프라다.

    셋째, 가장 넓은 저변을 차지하는 아마추어·생활 미술그룹이다. 이들은 예술의 대중적 기반을 다지고 사회 전반의 문화적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조기축구회처럼, 이들의 존재는 생태계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 세 집단은 각기 다른 목표와 작동 원리를 가진다. 따라서 지원의 방식과 철학 또한 완전히 달라야 한다. 그러나 광주의 지원 정책은 이 근본적인 차이를 간과한 채, 세 집단을 한데 묶어 동일한 잣대로 재단하고 똑같은 처방을 내린다. 진단부터 틀렸으니, 처방이 유효할 리 없다.

    2. 결과: 공공재원이 시장을 교란하는 역설

    잘못된 진단은 필연적으로 자원의 왜곡된 배분으로 이어진다. 행정은 가시적인 성과, 즉 판매 실적, 관람객 수, 행사 규모로 사업을 평가한다. 그 결과, 공공의 예산은 필연적으로 가장 보여주기 좋은상업 작가 그룹과 아트페어 같은 행사에 집중된다.

    바로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공공재원이 시장이 할 일을 대신하는 시장 교란행위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정부가 장사가 안되는 자영업자의 가게에 가서 직접 물건을 팔아주는 것과 같다. 시가 주최하는 아트페어에 시의 예산을 투입하고, 시립미술관이 그 아트페어에 참여한 지역 상업 작가의 작품을 구매해주는 구조는 결코 건강한 시장을 만들 수 없다. 오히려 시장의 자생력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병들게 할 뿐이다.

    공공예산이 상업 영역에 직접 투입될 때 나타나는 폐해는 명백하다.

    첫째, 경쟁의 원리가 왜곡된다. 시장에서 도태되어야 할 경쟁력 없는 작가나 갤러리가 공공 지원금이라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한다. 실력보다 관계가, 작품의 질보다 행정 서류 작성 능력이 생존을 결정한다.

    둘째, 자생력이 완전히 소멸한다. 작가와 갤러리는 더 이상 치열하게 시장과 컬렉터를 설득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평가의 주체가 시장이 아닌 행정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와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셋째,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 잡초가 논을 뒤덮으면 벼가 자랄 수 없듯이, 가치 없는 것들이 다수가 되면 가치 있는 것을 시장에서 밀어내게 되어 있다. 공공 지원에 길들여진 작가들이 판을 장악하면, 묵묵히 자신의 작업을 하던 진지한 작가들은 설 자리를 잃고 소외되며, 결국 요란한 빈수레들만 남긴 채 판을 떠나게 된다.

    3. 결론: 예산의 크기가 아닌 철학을 논할 때

    광주 미술계가 진정으로 살아나려면, ‘돈이 부족하다는 안일한 불평을 멈추고 예산이 어디로, , 어떻게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이 명확히 해야 한다공공 예산의 역할은 시장이 스스로 작동하는 영역(상업 미술)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논리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는 영역(비상업·실험 미술)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데 있다, 공공 지원은 당장의 수익성은 없지만 미래의 예술적 자산이 될 실험과 담론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이 원칙을 적용하는 순간,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는다. 지원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상업 작가 그룹에서 비상업·뮤지엄 작가 그룹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들이 상업적 압박 없이 실험과 담론을 생산할 수 있도록 작업실, 생활비, 창작 연구비, 공정한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공공이 해야 할 본질적인 역할이다. 상업 작가들에게는 직접적인 현금 살포가 아니라, 투명한 시장 환경과 해외 진출을 위한 홍보·제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옳다.

    지금의 방식처럼 방향이 틀린 곳에 더 많은 예산을 쏟아붓는 것은, 병의 원인은 외면한 채 진통제만 과다 투여하는 것과 같다. 예산이 늘어날수록 시장 교란은 심화되고, 파벌 간의 밥그릇 싸움은 더욱 거세지며, 생태계의 자생력은 더욱 빠르게 고갈될 뿐이다이제 선택은 명료하다. 예산의 크기를 논하기 전에, 예산의 철학을 재정립해야 한다. 광주 미술의 미래는 투입되는 돈의 총량이 아니라, 그 돈이 향하는 방향의 정확성에 달려있다. 그것이 이 도시가 놓치고 있는 가장 아프지만, 가장 근본적인 진실이다.

    * 이글은 최요안의 페이스북 글에서 옮겨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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