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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남화, 이제 무엇으로 남는가
지(知)· 정(情)· 예(藝)의 조화
현대문명 속에서 감성의 회복과 마음 닦기
남도조각의 거듭나기
매체의 다양성과 조형미의 확대
'닫힌 공간'에서 세상 속 '열린공간'으로
세계로 향한 문화의 창, 광주비엔날레
새로운 문화활력으로서 광주비엔날레
오월정신 계승과 통일의지의 결집, 광주통일미술제
광주비엔날레의 현실 과제
상생의 공동체 문화도시로
상생의 공동체 문화도시로
호남 남화, 이제 무엇으로 남는가
지(知)· 정(情)· 예(藝)의 조화
남화의 바탕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문화 자체가 크게 보아 자연주의라고들 말한다. ‘호남’이라는 지리적 접근이 아닌 지역민들의 정서가 배인 문화적 이름으로서 ‘남도’야말로 어쩌면 이 곳의 자연과 의식과 심성 그 모든 것들이 바로 남화의 밑뿌리를 이루고 있음은 이미 역사와 여러 문화적 자취들이 말해 주고 있다. 자연관조와 합일정신, 자연과 더불어 생을 일구어 온 남도민의 감성이 필묵을 빌어 남화라는 형식으로 담겨 온 것이다. 그 넉넉하고 온유한 남도문화의 멋과 운치가 소치나 의재의 회화는 물론이고 서양화가인 오지호나 김환기 회화에서도 모두가 자연과의 교감과 풍부한 시정으로 흐르고 있다.
사실 남화는 기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 감성의 흐름을 필묵의 자취로 옮겨내면서 호연지기의 시정(詩情)과 먹향(墨香)을 즐기는 문인화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간일하면서도 도도하리 만치 정갈한 문기(文氣)와 정신성과 풍류를 앞세우는 문인화에 비하면 훨씬 인간 본성을 따른다는 점에서 바탕을 달리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남종화니 남종문인화니 하는 것부터가 이미 학문을 어지간히 닦은 당대 식자층이나 풍류가들의 지적 여기와 정신적 유희에 바탕을 두면서 그것이 일본과 한국의 근대기 남화까지 흐름을 이어왔다.
그런 점에서 남화는 선비문화의 주변부 문화로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조선후기 남종화가 싹을 틔우기 시작할 때나 이후 화단에 뿌리를 내릴 때 문인사회가 그 중심에 있었고, 실제로 조선 후기 문화의 멋을 대변하는 삼재(三齋)- 즉 공재(恭齋) 윤두서, 겸재(謙齋) 정선, 현재(玄齋) 심사정 처럼 남종화풍을 남긴 문인화가(선비화가)나 그들 문인들 속에서 시정을 익히고 화찬을 받으며 성장한 화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문인사회의 먹향 주변에서 그들의 문자속과 상류 지식인사회에 대한 문화적 동경이 후대 남종화의 전형으로 자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우러나는 자연스런 흥취를 시정과 문기로 가다듬어내는데 선비문화의 미적 취향을 하나의 전형으로 삼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선비문화는 유교사회에 뿌리를 두되 풍류와 호연지기?정신적 여기(餘技)에서 도가의 은일(隱逸)과 선가의 탈속(脫俗)까지 함께 누렸던 셈이다.
그 학문수양의 여기와 지적 유희라 할 문인화 또는 남종문인화가 문기를 넘어 회화로서 멋을 담게 된 것이 남도의 자연과 감성 속에서이고, 그것이 호남남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며 어느 면에서는 서로 섞이기도 하면서 그 맥을 이어왔다고 하겠다. 중국은 물론 한국의 오랜 문화전통 속에서 형성된 수묵사의화(水墨似意畵)로서 남종화가 남도의 자연과 멋과 심성으로 변용된 것이 바로 호남 남화인 것이다.
현대문명 속에서 감성의 회복과 마음 닦기
농본사회도 가고 선비문화도 갔다. 학식을 쌓은 지식인은 많되 풍류와 호연지기를 즐기던 선비는 이미 옛 자취가 되었다. 유가적인 문화구조나 부와 권세에 종속되던 쟁이들의 시대도 갔다.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인식, 첨단문명의 시감각과 전자매체 자극이 강도를 더해 가는 현대사회, 21세기니 새로운 천년이니 하는 지금의 시류 속에서 남화라는 말 자체가 이미 격세지감을 준지 오래다. 그러나 개인의 특출한 창의성을 중심에 두는 인위적 활동으로서 서구 예술개념 보다는 자연본성과 함께 하고자 하는 정신적 유희로써 관조와 교감이 문제다. 사실 남화에서 산수초목의 형세나 필묵의 운용은 단지 방편일 뿐이다. 자연과 인간 본성이 서로 교감을 나누고 그 깊숙한 곳의 내적 실체를 시정 어린 화폭으로 펼쳐내고자 하는 마음 닦기인 것이다.
물론 그 겉멋을 흉내내고 이를 다시 뒤따르는 아류들이 남화를 형식화된 틀로 박제시키고 부정적 의미의 지역화풍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본래가 선비문화와 밀착된 탓으로 도무지 사람살이의 살가운 맛이나 현세생업의 땀내와는 거리가 먼 채 음풍농월(吟風弄月)이나 즐기는 여기취미와 필묵놀음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은데다, 그나마 그림의 형식만을 추종하여 생업의 방편쯤으로 삼고 있는 예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화전통을 직간접적으로 물려받은 이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거나 연로해져가고, 이들로부터 배출된 청년세대는 점차 그 그림자를 답습하기보다는 자기시대의 감각에 맞춰 자유로운 회화형식이나 표현매체를 즐기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미 환경자체가 남화의 본질에 젖어들기에는 너무나 달라진 현실상황에서 감성적 바탕이나 시적 흥취보다는 재료와 기법구사, 감각적 표현형식을 풀어놓거나 상품으로서 효과를 다듬는데 관심이 기울어져 있는 예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본래의 정신적 자양분이 충분히 채워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미 뿌리는 쇠약해지고 무성히 뻗었던 가지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기를 잃어가고 있으며 새로 돋아난 가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이(變異)를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다.
분명 남화는 소재와 형식보다는 감성과 정신의 문제인 만큼 전통수묵산수나 사군자 십군자 식의 정형화된 소재와 화면구성으로 틀을 지을 일은 아니다. 과거처럼 생활자체가 자연일 수는 없는 지금의 사람살이지만 자연은 산수초목이라는 물리적 실체나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이 아닌 인간 본연의 마음 또는 그 감성적 바탕이기도 하다. 비록 남화가 격조 높은 문화적 멋으로 흥성하던 때와는 환경자체가 많이 달라졌지만 생활 속에서 깨달아 가는 자연 철리와 넉넉한 감성으로 현대사회에 촉촉한 시정과 삶의 윤기를 더하며 그 여유로운 멋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자연소재의 겉모습만을 필묵으로 옮겨내며 감각적 자족에 젖어 있거나, 단지 예술을 빙자하여 생업의 방편으로 남발하고, 기묘한 겉바름으로 개성을 가장하기 보다 본래의 문화적 생기와 향취를 지닌 한국문화 전통과 예술의 맥을 되살려내는 거듭나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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