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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미술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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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로 향한 문화의 창, 광주비엔날레


    새로운 문화활력으로서 광주비엔날레

    1995년은 광복 50주년이자 5.18광주민중항쟁 15주기이면서 `88년 부활된 지방자치제가 광역체제로 본격화된 해이고, 정부가 문화 활성화를 내걸고 처음 지정한 ‘미술의 해’였다. 또한 문민정부 태생에 대한 정당성과 민주화운동의 결실이라는 명분확보 때문에라도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인정과 보상책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였다. 아울러 그 동안 정치권에 의해 깊은 골이 패인 지역감정과 지역불균형의 해소라는 문민정부의 정치적 기대효과를 위해서라도 ‘광주?전남’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자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시 행정당국자와 지역연고 인사 미술인들의 발의로 자위자찬식 ‘예향’이라는 전통을 정부의 ‘세계화’ 구호와 연결시킨 대규모 국제미술행사가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광주의 입장에서도 이 광주비엔날레는 피상적 ‘예향’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정치ㆍ경제의 상대적 빈곤 박탈감을 대신하고, 침체된 지역문화예술계를 새로운 활력으로 채워주면서, `80년대 민주화운동과정의 내적 응어리와 주체적 역사현실 경험을 문화적 생산력으로 전환시켜 국제사회 민주ㆍ인권의 실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서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몇몇 정책입안자와 미술인 사이에 오가던 구상이 현실로 옮겨지기까지 정작 미술계는 물론 시민사회의 의견수렴과 공감대 마련, 대내외 환경의 분석과 장ㆍ단기 전략수립 등이 마련되지 못한 채 짧은 기간에 무리하게 강행됨으로써 처음부터 비판과 반목의 불씨를 안고 출발하였다. 대규모 국제행사로서 기초적인 기반환경 조성과 미비점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상태에서, 실험적이면서도 유무형의 가치 창출을 위한 현대미술의 장으로서 밀도 있는 행사기획 및 최소한의 준비기간과 합리적 절차를 거치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용어조차 낯선 서구식 대규모 현대미술제 운영방식을 거의 그대로 옮겨 온데다 올림픽이나 엑스포 같은 국제적 체육행사나 박람회 정도의 일회성 이벤트쯤으로 인식된 상태에서 전시행정과 성과주의의 관례를 반복하는 추진과정에 대한 안팎의 비난여론이 적지 않았다. 또 기왕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정치적 보상차원의 접근이라면 먼저 구체적 진상의 확인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진 뒤 그에 따른 보상책이 제시되어야 하며, 광주의 진정한 정체성과 오월정신의 실체를 가다듬은 뒤 이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행사여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와도 배치됨으로써 상처를 서둘러 봉합하기 위한 관주도 축제라는 인식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상태에서 전혀 다른 입장과 성격의 [광주비엔날레]와 [광주통일미술제] 두 행사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열리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튼 국내에서 처음 개최되는 대규모 국제실험미술의 장인 광주비엔날레는 `94년 11월 개최계획이 발표되고 12월에 설립준비위원회와 조직위원회 발족, `95년 1월에 행사기간과 대회 공식명칭, 주제선정 등이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광주비엔날레는 광주만의 행사가 아니고 우리나라 전체의 명예가 걸려있으며 대전 엑스포와 같은 큰 의미를 지닌 행사이므로 중앙정부차원에서 적극 지원토록 할 것’이라는 대통령 연두순시(1.27)와, 행사를 불과 반년 남겨둔 2월에 전시관 기공식, 3ㆍ4월에 각 대륙권별 담당 커미셔너와 참여작가 선정 및 재단법인 설립, 특별전 확정, 5월 무지개 다리 및 야외공연장 착공, 7월 본전시 참여작가 확정, 8월 주 전시관 준공, 9월 작품반입 및 설치 등 창설안 발표후 불과 10개월만에 경이로운 추진력으로 행사를 개막하게 되었다.

    `95년 9월 20일부터 11월 20일까지 비엔날레관을 중심으로 중외공원문화벨트에서 열린 이 『95광주비엔날레』는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아래 대륙별 7개 권역에 50개국 92명이 참여한 본전시와 함께 [인포아트전], [증인으로서 예술전], [광주 5월정신전] 등 6개의 특별전에도 총 249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주제에서 시사하듯이 지구촌 인류사회 곳곳에 둘러쳐진 현상적 장벽과 지리적 물리적 인종ㆍ민족ㆍ종교 따위의 이념과 관념을 뛰어 넘어 새로운 문화와 역사의 장을 열자는 전시기획의도를 반영한 작품들은 지역민들에게는 물론 국내 미술계에 적지 않은 충격과 자극, 혼란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이 첫 행사에서 비디오아트의 세계적 거장 백남준을 중심으로 비디오 영상 설치작품들의 전면배치와 함께 주제가 암시하듯 소재와 형식 방법 등 기존 관념의 틀을 뛰어넘어 표현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강렬한 메시지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어 미술계에 강렬한 충격과 자극을 주면서 동시에 표현소재 형식 방법들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과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었다. 특히 기존 서구중심 비엔날레에서 소외되어 온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 청년ㆍ신예작가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의 거칠지만 다양한 발언과 힘이 광주비엔날레만의 차별화된 장을 만들어 주었다고 평가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일반적 문화수준에 비해 전혀 낯설기만 한 설치?영상매체와 제3세계 청년작가들의 작품이 많고, 행사규모 또한 방대하여 163만이라는 초유의 관람객을 불러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호기심과 기대를 폭넓은 이해와 참여의식으로 이끌어내는데는 미치지 못하였다.

    아무튼 일반인은 물론 미술계에도 낯선 형식의 이 대규모 미술전은 미술에 대한 일반 인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면서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갈망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미술을 통한 사회교육 효과로서 지구촌의 현실과 시대문화 현안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이끌어내면서 소통 매개체로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오월정신 계승과 통일의지의 결집, 광주통일미술제

    `80년대 현실주의 민족민중미술운동의 연장선에서 진정한 오월정신 계승과 ‘안티-비엔날레’를 천명한 [95광주통일미술제-‘역사는 산을 넘어 강물로 흐르고’]가 광주비엔날레 기간인 9월 21일부터 10월 5일까지 오월묘역 일대에서 펼쳐졌다. 김윤수 강연균 김지하 명노근 정수만 조홍규 등 미술은 물론 시민사회단체ㆍ오월단체ㆍ문화예술계ㆍ학계ㆍ종교계ㆍ정계를 망라한 전국 103인의 추진위원회 주최로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회장 이준석)가 주관을 맡아 발의된지 불과 3개월 여만에 광주비엔날레의 모순에 대응하여 행사를 개막하였다. 이들은 ‘끊임없는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미 비엔날레가 중단 내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라면 건강한 내용성을 갖는 미술제를 열어 당당한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고, 예향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통해 광주정신의 승화와 통일에의 의지를 담은 시각적 대항논리를 세워야 한다’(`95년 6월 28일 추진위원회의 서신형태 발송문)며 각계와 시민들의 동참 후원을 호소하였다.

    비엔날레 개막과 동시에 막을 연 「통일미술제」는 먼저 오월묘역 초입에 무리를 지어 선 장승과 솟대들을 시작으로 1,200여기의 만장이 약 4km의 길 양쪽으로 열을 지어 늘어서면서 묘역 바로 앞에 이르러서는 혼령들의 씻김과도 같이 화려한 꽃상여를 띠워 올려 행사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맡았다. 강연균이 제작한 현장 설치작품 형식의 이 <하늘과 땅 사이>는 전국 각지 각계인사들이 글을 보내오거나 직접 광주로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써넣은 오월ㆍ민주 희생자 위령, 오월진상규명 촉구, 민주정신 계승 등의 구호와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광미공 회원을 비롯한 전국 146명의 회화ㆍ조각ㆍ판화 등 작품들이 주차공간에 마련된 임시 전시대를 중심으로 선보여지고, 만장과 대형 걸게그림들이 오월묘역을 감싸며 설치되었다. 이들 작품들은 15년이 지난 오월의 상처에 대한 스스로의 치유와 함께 현실인식의 끈을 다시 힘있게 붙들어 잡는 현실주의 참여미술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주어 비엔날레와 대조를 이루었다. 아울러 시대적 현안에 대한 즉각적인 대처와 그 올바른 해결을 위해 미술은 물론 문화예술계가 시민사회와 한 뜻이 되어 악조건 속에서 일궈낸 미학적 가치 이상의 소중한 의미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 역시 비엔날레와 마찬가지로 ‘자기규정성에 철저하게 집착해 있으면서 전시동기 자체가 자구적인 측면이 강하고 타기해야 할 독점욕망에 다름 아니며, 대중들의 다양하고 성숙한 시각문화에 대한 고려가 소홀하였다’(이세길, `95년 당시 도록)는 내부 반성을 과제로 남겨 놓았다. 사실 ‘안티’를 내걸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엔날레와 더불어 그 동안 억제되어 온 광주의 내적 응어리와 생산적 출구로의 갈망을 한꺼번에 터트려 냄으로써 광주현지를 방문한 이들에게 깊은 문화적 충격을 남겼고, 세계로 향한 광주의 새로운 전기와 가능성을 다지는 동반상승의 효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현실 과제

    예향이라고는 하나 전통성과 자기보전성이 강한 문화풍토에 비해 비엔날레라는 파격과 실험성 위주의 서구식 대규모 현대미술제 형식, 그에 따른 문화적 이질감과 함께 창설 당시 정치적 복선의 개입에 대한 거부감과 경계심, 미술계 전반의 계파의식과 소아적 냉소주의,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의 불확실한 문화정책과 전략적 목표설정 부재에 따른 안정적 개최기반과 국제적 위상확대의 어려움, 더하여 최소 1시군 1축제 이상을 내건 지자체마다의 대규모 행사 난립 속에 지역단위 행사로 무더기 폄하 등 주변을 둘러싼 난기류들은 광주비엔날레의 현실적 한계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국제행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해외로부터 접근이 쉽지 않은 교통망과 다양한 선택 폭을 갖추지 못한 숙박시설은 기반조성의 한계로 자주 지적되는 사항들이지만 뚜렷한 보완책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 불편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색다르고 깊은 인상을 심오 줄만한 현지문화 체험기회를 중심으로 한 주변 연계관광 소재의 개발은 물론 돌아간 뒤 자연스레 홍보소재가 되는 지역 특산품과 행사기념품 같은 특징 있는 쇼핑거리 마련 등이 숙제로 남아 있다.

    상차림은 서양식에 낯선 메뉴들인데 관객 대다수는 내국인이다보니 식성부터가 맞을 리가 없고, 감당하기 버거운 큰 잔치를 벌려놓고 그 치닥거리에 치어 손님대접 또한 소홀하다보니 안팎으로 불만만 높다. 처음 이 행사를 주도했던 이들의 그 저돌성과 용기가 무모한 일회성이 아니었다면 행사의 목적과 방향을 뚜렷하게 가다듬으면서 문제되는 일거리들을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보완하고 긴 호흡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왜 이런 행사를 벌리는지 조차 공감대를 갖지 못하면서 당장 손바닥에 쥐어지는 경제효과를 우선하는 대다수 지역민이나 좀처럼 마음을 합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과 국내 미술계가 실질적인 주인으로 자리하도록 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미술중심 행사이니 만큼 미술계 내부에서도 스스로의 도약과 교류확대의 발판으로 삼아 모자라는 부분을 고치고 채워갈 수 있도록 힘을 합해야 한다. 광주비엔날레의 탄생동기나 성격, 운영과정, 관련된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이런저런 개인적 비판 시각과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비난을 일삼으면서도 우선 국제적 활동경력을 위해 해외의 다른 유사행사나 전시 참여는 영예롭게 여기고 국내에서라도 외국작가와 전시를 만들기 위해 분주한 경우들도 적지 않다. 물론 행사의 당초 성격과 본질이 무엇인지는 입장에 따라 이해가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미술을 통한 동시대 문화와의 호흡과 새로운 활력의 충전, 대외적 소통 확대를 기본 취지로 최대 공약수를 삼을 수 있다면 이를 구체화하고 현실과 접목하는 방법에서 각각의 입장과 바램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 의견제시와 참여자세가 오히려 필요한 것이다.

    또 국제사회 미술계에 한국문화와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세계문화교류의 창이라 한다면 문화행정당국이 하나의 정책전략으로 범국가적 차원의 행사 위상을 분명히 하고, 관련분야는 분야끼리 공동의 목표에 대한 인식부터가 선행하면서 다각적인 합심과 참여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에 따른 자율권을 부여한답시고 지역마다 중복투자와 난립이 더해가고 있는 수많은 축제 행사들을 방임하기보다는 최소한 각각의 이해관계와 욕구들을 전체적으로 조정 조율하는 컨트롤 타워로서의 기능이라도 확실해야 할 것이다. 직접적 개발성과나 경제이익을 수치로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예술이라는 창의적 발상과 상상력의 개발, 보다 신선한 조형언어와 소통방식의 확대를 통해 우리 사회 현대문화의 다변성과 변화속도를 올바르고 건강한 방향으로 키워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광주비엔날레 재단 내부적으로도 미술계 안팎의 현실적 상황과 여러 환경에 대한 보다 세심한 진단과 문제인식, 그 해결을 위한 실현 가능한 방안모색이 필요하다. 탄력 있고 생동감 넘치는 문화예술 조직체이면서 지역사회는 물론 나아가 국내외적으로도 역할을 인정받는 창작발표 무대의 운영체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조직운영 자체도 광주시의 관료적 행정체제를 이식 답습하기보다 그야말로 문화마인드가 통용되는 유기적 기구로서 그 변화속도와 형세가 결코 일정치 않은 문화계 흐름과 호흡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화행정의 특수성에 따른 전문기획력을 활성화하고 이를 실행하는데 따른 간단명료한 추진절차와 자율적 판단과 실행이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여러 분야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앞선 체제의 미술행사 조직과 운영실태를 연구 적용하면서 실무경험과 수행능력을 꾸준히 높여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관련 정보 자료의 수집과 연구 분석, 국내외 각 관련기관과 단체 전문가들간의 정보공유나 교류체제를 넓혀 가는 일도 초기단계부터 지속적으로 다져가야 할 요건이다.

    아무튼 세계의 문화지형도로 볼 때 작은 나라의 지방도시 광주에서 새로운 문화활력의 기폭제로 놀라움과 기대, 우려와 비난 속에서 광주비엔날레의 닻을 올렸다. 근대주의, 현대문명을 주도해온 국가단위 또는 거대도시들에 가리어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했던 세계 곳곳의 작은 도시들이 고유한 역사 전통과 문화적 자산들로 개별존재성을 인정받고 새로운 가치개발과 가능성으로 기대를 불러모으고 있는 추세와 함께 광주비엔날레 또한 세계문화예술계의 관심과 주목을 지속적으로 끌어 모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도시기반과 문화환경자체가 열악한 현실여건으로 보면 먼저 도시 문화정책 차원의 거시적 전망이 세워져야 하고 이에 따른 체계적이고 긴 호흡의 여러 육성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거기에 시민사회의 합의와 참여, 관련 분야의 창의적 문화가치 계발노력들이 한데 어우러져 흔들림 없는 존립기반과 생기 넘치는 문화창구로서 조건을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남도문화의 전통인 자연과 인간의 조화, 자연친화적 문화를 바탕으로 그것이 현대문명에 대한 반작용이나 대항문화가 아닌 하나의 대안으로서 실제 삶을 풍요롭게 채워주고 문화적 경제적 기대치를 채워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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